Skip to content
Go back
📖 리뷰

2026년 2분기에 읽은 책들

by Tony Cho
17분

핵심 요약

소설(삼체, 구상섬전, 싯다르타, 8번 출구,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회고록(배움의 발견), 에세이(요리를 한다는 것), 스타트업(패턴 파괴자들), 사회·과학(모든 것은 결정되어있다, 공정하다는 착각), 그리고 별도 포스트로 다룬 악마와 함께 춤을, 브레이크 넥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읽은 2분기 독서 기록.

2026년 2분기에 읽은 책들 표지 모음

들어가며

2분기에도 10권 넘는 책을 읽었는데, 1분기보다 훨씬 다양하고 재밌고 깊게 생각할 수 있는 책들을 읽었다. 3분기에 읽으려고 또 새로운 책들을 쌓아놨는데 시간이 지나면 리뷰를 남기지 않을 것 같아 열심히 작성했다.

해당 리뷰는 어떠한 자료나 남의 감상평을 찾아보고서 쓴 게 아닌 오로지 내가 느낀 부분을 있는 그대로 쓴 것이라 당신이 느끼는 그리고 실제 책에서 말하는 메시지와 상이할 수 있음을 주의 바란다.


「패턴 파괴자들」 - 마이크 메이플스 주니어

패턴 파괴자들

패턴 파괴자는 미래를 멀리서 예측하는 사람이 아니라, 미래를 먼저 살아보고, 그 미래를 간절히 기다리던 사람을 찾아내고, 기존 기준에 비교되지 않는 다른 미래를 말하며, 그 비전을 지키기 위해 NO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트위치 등 여러 혁신 기업에 투자를 한 투자자의 입장에서 혁신 스타트업과 그들이 어떻게 기존 패턴을 파괴하는지에 대해서 사후 분석으로 쓴 책이다. 사후 분석이다보니 결과론적이라는 한계가 있고 결국 현재 AI 시대에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이러하니 이런 사례를 참고해서 너도 이런 자세로 해야한다.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nugget에 작성한 “가장 근본적인 한계는 타인의 규칙을 기준삼아 자신의 성공을 정의하는 것이다.”라는 문장이나, 저자가 마지막 장에 언급한 “갈매기의 꿈” 비유는 혁신을 위해 아웃라이어가 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뻔하지만 세상 모든 기업가들에게 용기를 주는 내용이다.

구체적인 액션 아이템을 기대한다면 추천 no. 트위치, 에어비앤비 등 여러 유수의 IT 스타트업 케이스 스터디를 읽고 싶다면 추천. But, 나처럼 오랫동안 IT 스타트업 업계의 웬만한 히스토리나 프로덕트를 알고 있다면 새로울게 없는 책이다. 특히, AI 시대 이전의 스타트업 기업들의 스토리에 국한되어 있어 나에겐 진부했다. 책에서 말하는 메시지는 언제나 유효하나, 케이스 스터디에 나오는 방법론은 지금 시대엔 모두 구식이 되어버림.

다른 갈매기들은 한계로 가득한 세상을 봤다. 하지만 갈매기 조너선은 한계가 없는 세상을 봤다. 다른 갈매기들은 무리에 얽매여 있었다. 조너선은 남들과 다르게 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갈매기 무리가 뭐라고 하든 자신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자라면서 세상은 원래 그렇다고, 이 세상 속에서 그냥 살아가면 되는 거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너무 저항하지 말라고요. 괜찮은 가정을 꾸리고, 즐거운 일도 하고, 돈도 조금 모으면서요.

하지만 이는 대단히 제한된 삶이죠. 삶이란 한 가지 사실만 깨닫는다면 훨씬 충만해질 수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주변의 모든 것들이 사실 당신보다 똑똑하지 않은 사람들이 만들어 냈다는 것이죠. 당신이 삶이라 부르는 모든 것들은 사실 당신이 바꿀 수 있고 영향을 줄 수도 있으며, 당신이 직접 만든 무언가를 다른 사람들이 쓰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사실을 한 번 깨닫고 나면 예전과 같은 사람으로 다시 돌아갈 수가 없어요.

(스티브 잡스)


「삼체 1, 2, 3」 - 류츠신

삼체 1, 2, 3

올해 몇권의 소설을 더 읽을지 모르겠지만, 올해 기준으로는 최고의 소설이다. 특히, nugget에도 썼다시피 삼체 1,2권은 하나의 완성된 작품과 결말로 보면 최고의 작품이다. 3권의 세계관 확장이 압도적 스케일과 뇌절이라는 호불호가 있는 만큼. 삼체 1,2권까지는 꼭 강추하는 작품. 시리즈 작품이고 시간대별로 1~3권이 이어지지만, 사실 1,2,3권 모두 별개의 다른 주인공, 타임라인, 메시지를 가지는 작품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스토리는 당연히 2권의 뤄지. (뤄지는 3부에서도 중요한 인물로 나온다.) 특히, 뤄지를 비롯한 면벽자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 자체가 2부의 핵심 플롯이면서도 반전이기도 한데, 하나하나가 다 기발하다.

이 책이 재밌는건 중국 공산당 체제에서 나온 SF 소설이라는 건데, 아래에도 있는 “브레이크넥”에선 저자가 “음흉한 불길에 물든, 피에 젖은 피라미드를 닮은 적대적인 문명 앞에서, 유일하게 남은 냉혹한 진실은 생존뿐이라는 게 바로 류츠신의 삼체 3부작을 관통하는 사상이다. 류츠신은 생존 의지를 가장 냉혹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중국 공산당에 유리한 내용을 반복해서 풀어나간다.” 라는 평이 인상적이다. 2부도 일부 면벽자들을 중심으로 풀어나가지만 일종의 구도자의 플롯인데, 이러한 평가가 극대화되는게 3부이다. 주인공 몇명에게 인류의 존망이 남겨져있다는 것, 생존과 전진을 위해서는 그 어떠한 선택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소설 속 토마스 웨이드 같은 인물을 통해 이러한 느낌이 극대화된다. 그래서 소설의 재미와 달리 소설 속 인물들의 행보에 대해서 다양한 관점에서 고민해볼 수 있다.

하지만 3부 마지막 결말을 생각하면 꼭 브레이크 넥 저자의 평이 맞는지는 의문이다. 내 생각에 주인공 청신은 그와는 다른 선택을 하기 때문.

삼체인들이 그저 지구 멸망을 향해 온다는 것 자체가 외계인에 대한 신비, 미지의 탐구와 희망을 다루는 미국 SF와 완전히 결이 다른 중국 SF 소설만의 특징이라고 하겠다.

아 그리고 하드 SF는 아니다. 삼체 2부, 3부는 SF의 탈을 쓴 판타지 소설에 가깝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첫째, 생존은 문명의 첫 번째 필요조건이다. 둘째, 문명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확장되지만 우주의 물질 총량은 불변하다.

우주에 존재하는 각각의 문명 사회는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어. 혼돈성과 우연성은 까마득히 먼 거리에 희석되었지. 그 문명들 하나하나가 매개변수를 품고 있는 점이야. 우주사회학은 인류사회학에 비해 수학적 구조가 훨씬 분명하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뿐이에요. 총을 쏴서 없애버리는 거죠. 이 숲에서 타인은 그 자체만으로 지옥이고 영원한 위협이에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그 어떤 생명도 곧바로 없애버려야 해요. 이것이 바로 우주 문명이고 페르미 역설에 대한 해석이에요.

수학모델의 전체 구조는 한눈에도 다 보이도록 단순명료하지만, 논리적으로는 반석만큼 탄탄한 공리가 주춧돌이 되어 있다.

영혼 속에 남아 있던 마지막 한 가닥 빛이 사라졌고 모든 것이 어둠 속으로 파묻혀버렸다.


「구상섬전」 - 류츠신

구상섬전

삼체 0이라는 제목에 속아서 3부 결말을 읽자마자 바로 구매했다. 삼체랑은 완전히 상관없는 별개의 소설이다. 구상섬전이라는 허공에 갑자기 뇌구가 나타나는 미스터리한 자연현상을 소재로 풀어내는 스토리다. 삼체에 나오는 몇가지 허구 설정들(양자 관련)도 여기서 확립되었다.

스토리만 보면 그렇게 추천할만한 소설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주인공이 구상섬전의 비밀, 그 문제 하나만을 풀기 위해 일생을 바치는 초반부 스토리만으로도 나도 뭔가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동기부여를 많이 받았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도 생각나는 부분. 미시 세계의 양자 현상을 거시로 가져왔을때부터 모두 허구의 설정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주인공이 문제 해결의 키맨이 아니라는 부분이 좀 아쉽지만 삼체에서도 그렇듯이 작가가 인물들의 개성 하나만큼은 잘 구성해서 서사를 끌고 가서 그럭저럭 삼체의 여운을 달래기에 나쁘지 않았다.


「요리를 한다는 것」 - 최강록

요리를 한다는 것

흑백 요리사 2부의 우승자이자 영원한 우리의 조림핑 최강록 요리사의 요리 에세이. 밈을 넘어 트렌드가 된 그의 캐릭터가 단순히 웃음을 넘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가 이 에세이에 담겨져있다고 생각한다. 직업인으로서 요리에 대한 생각, 고민들을 읽어가다보면 이런 생각들 가운데 그의 한마디가 표현되었을 때 그 울림이 이해가 되었다. 그가 우려내는 국물처럼 생각이 진국이라는 느낌.

셀럽 최강록이 아닌 요리사 최강록의 생각은 점점 더 퇴색되는 노동의 의미와 직업 윤리에 대한 가치 그리고 미디어에 비춰지기 이전에 매일매일 수행하듯 하루하루를 보낸 그의 시간을 엿볼 수 있다. 꼭 요리에 대한 글이 아니라 어떤 직업을 가진 우리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에세이.

짜장면과 짬뽕을 묘사한 파트를 읽고 그날 바로 중국집에 가서 짜장, 짬뽕, 탕수육에 맥주까지 마신건 비밀.

“치열하게 요리에 대해 토론하면서 밤을 샌 적이 있느냐”고 젊은 후배들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그런 경험이 있던 나조차 ‘그런 거 없어진 지 오랜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치열한 토론이 있으려면 기본적으로 식당이라는 직장 생활이 즐거워야 한다. 요리하는 게 재미있으니 일이 끝나서까지 요리 얘기로 이어지는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잘 견뎌내는 것도 대단한 인내다. 하루에 1천 개씩 꼬치를 꽂는 일을 하게 된다면 그건 권태를 넘어서는 일이다.

기술이라는 건 100번 정도는 해야 통달하는 것이고, 나는 그 100번을 향해 가는 도중이다. 100번이라는 목표를 세워서 지루함을 느끼지 않겠다고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지금도 늘 부족함을 느낀다. 다른 장르의 요리를 하는 분들을 보면 내가 모르는 것이 정말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나는 우연히 요리사가 되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요리사가 되려는 노력은 여전히 진행 중인 것 같다.

다들 삶의 맥락이 다르고, 들이는 품과 시간, 경제적 요건을 다 고려해볼 순 없으니 뭐라고 조언을 해줄 순 없겠다.


「악마와 함께 춤을」 - 크리스타 K. 토마슨

악마와 함께 춤을

크리스타 K. 토마슨이 분노와 시기, 경멸 같은 ‘나쁜 감정’을 변호하는 책이다. 우리는 감정을 완벽히 통제하는 ‘감정 성인’을 정점에 둔 등급표를 당연하게 여기지만, 저자는 그 등급표 자체가 틀렸다고 말한다. 부정적인 감정은 제거할 결함이 아니라 내가 아직 내 삶에 단단히 붙어 있다는 신호이고, 문제는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니라 그걸 조급하게 통제하고 정당화하려는 태도라는 것이다. 자세한 후기는 리뷰 포스트에 남겼다.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있다면 추천하는 책.

나쁜 감정은 좋은 삶을 방해하지 않는다. 나쁜 감정은 당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나타내는 신호가 아니다. 이것들은 정확히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다. 즉 당신이 자신의 삶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에 대처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라. 그냥 느끼는 법을 배워라.


「브레이크 넥」 - 댄 왕

브레이크 넥

댄 왕이 중국을 ‘공학자의 나라’, 미국을 ‘법률가의 나라’로 대비하는 책이다. 공학자가 다스리는 중국은 무언가를 압도적인 속도로 만들어내지만(고속철도를 중국은 3년에 깔고, 캘리포니아는 17년째 못 끝냈다), 그 속도는 한 자녀 정책이나 제로 코로나처럼 사람을 부품처럼 다루는 끔찍한 대가를 치른다. 저자는 중국도 미국도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고 둘 다 까는데, 그 사이에서 만들지도 지키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낀 한국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곱씹게 만든다. 자세한 후기는 리뷰 포스트에 남겼다. 현재의 중국과 미국이 궁금하다면 추천하는 책.

대부분 법률가 출신으로 이루어진 미국의 사회 지도층은 주로 무언가를 가로막고 방어하는 데 능하지만, 대부분 공학자나 기술자 출신으로 이루어진 중국 고위 지도부는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데 능하다.

사람들의 상상 이상으로 효율적인 정부를 운영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중국에서 보낸 6년의 세월을 통해 나는 정부가 국민의 의견에 크게 구애받지 않을 때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공학자 중심 국가는 기본적으로 국민을 개인이 아닌 하나의 집단으로 본다. 무엇보다 중국 공산당은 자신들을 국가와 사회 전반에 걸쳐 통일된 행동을 하도록 조율하며, 국민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전략적 계획을 실행할 수 있는 전문가로 여긴다.

중국은 고열을 동반한 전염병이 퍼지는 상황에서 국민의 해열제 복용을 가로막은 유일한 국가다. 공학자 중심 국가의 뒤틀린 논리를 이보다 완벽하게 요약한 사건은 없을 것이다.

덴마크가 풍력발전 산업에서, 그리고 한국이 메모리 칩 산업에서 그랬던 것처럼 소규모 선진 국가들은 이제 어떤 전략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싯다르타」 -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워낙 유행처럼 읽는 책이라 잠깐 비는 시간을 이용해 이틀 만에 금방 읽었다. 어릴적에 구운몽의 주제가 인생무상이라는 얘기를 듣고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양소유는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에 오르고 여덟 명의 부인을 누리는 호사를 누리고 꿈에서 깨어 갑자기 깨달음을 얻고 인생무상을 논하는데, 난 이게 경험한 사람만이 할수있는 말이지, 그저 이걸 보고 인생무상을 논하는건 기만이라고 생각했다. 주인공 싯다르타는 이 점을 파고들어 기존 붓다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수행도 쌓고 속세에 젖어 살다가 결국 깨달음을 얻는다. 어떤 경험 없이 인생무상과 진리를 논하는건 그의 친구 고빈다처럼 그저 깨달음을 위한 깨달음이라는 표상을 쫓게되는 것이다. 삶이라는건 그 과정 속에서 충분히 경험하고 느껴야만 하는 것이고 그걸 통해서 얻는 깨달음도 모두 제각각이다. 그런 경험없이 깨달음을 논하는 것 자체가 기만이다.

또한 싯다르타의 진정한 시련은 본인의 아들을 통해 겪게 되는데, 그러한 깨달음을 얻었더라도 가족(또는 사람)에 대한 애착과 사랑은 그것만으로도 우리에게 시련을 주며 이 경험과 실패를 통해 진정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게 된 과정이 납득이 되었다.

제목만 보면 부처의 가르침이나 불교에 대한 내용 같지만, 그것보다 싯다르타라는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삶이 얼마나 어렵고 시련이며 강물처럼 흘러가는 시간 속에 덧없음, 하지만 그 순간순간의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전달한다고 생각한다.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직접 체험해보는 것은 좋은 일이지. 세상의 쾌락과 부가 좋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어린 시절에 이미 배웠어. 그 사실을 안 지는 오래되었지만 이제야 비로소 직접 체험한 거야. 이제야 그 사실을 제대로 알게 됐고,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눈과 가슴, 위로도 알게 되었어.

그런 사람의 눈은 자신이 찾고자 하는 것만 보게 되고, 그래서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며 아무것도 마음속에 들이지 못하는 법이죠. 늘 자신이 추구하는 것만 생각하고, 하나의 목표를 정해놓고는 그 목표에만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자식을 아끼는 마음과 자식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 앎보다 더 강했던 것이다. 살아오면서 무엇에 이토록 마음을 빼앗긴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자네는 이 가르침에 웃을지도 모르겠지만, 고빈다, 이제는 사랑이야말로 내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라네. 이 세상을 완전히 이해하는 일, 세상을 설명하고 세상을 경멸하는 일, 그것은 위대한 사상가들이 하는 일이겠지. 하지만 내게는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것, 세상을 경멸하지 않고 세상과 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것, 세상과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의 마음, 외경심을 품고 바라볼 수 있는 것만이 중요하다네.


「배움의 발견」 - 타라 웨스트오버

배움의 발견

이 책이 꽤 유명하던 7, 8년 전 500페이지나 되는 양장본을 구입해놓고는 교육 도메인 책이라고 오해해서 오래도록 펼쳐보지도 않다가, 정확히 3일 만에 다 읽었다.

내용은 단순하다. 극단적인 몰몬교인 아버지에게서 자란 아이들은 공교육은커녕 사고를 당해도 병원에 가지 못한다. 폐철 처리장에서 일하는 저자 타라의 어린 시절은 가혹한 노동 환경과 망상에 사로잡힌 아버지, 자신을 폭행하는 한 명의 오빠가 채우고 있고, 그런 가족과 마지막까지 화해하지 못한 채 한 개인으로서 자유와 행복은 얻었지만 가족(특히 부모님)과는 결국 새드엔딩을 맞는 이야기다. 초등학교도 못 간 타라가 케임브리지를 거쳐 하버드에서 박사 학위까지 취득하는 인간 승리의 과정은, 사실 이 책의 핵심이 아니다.

우리가 자라고 영향받은 모든 환경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다. 우리는 내가 생각하고 내가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이 그저 환경에 의해 주입받은 것이라는 불편함을 외면하고 있다. 타라의 숨막히고 가슴 답답한 어린 시절부터 최근까지의 이야기는, 주어진 환경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아를 찾는 과정이다. 바로 교육을 통해서.

이 책이 빛나는 건, 교육을 통해 자아를 얻기 위해 부모와의 절연을 대가로 지불했다는 점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한편으로는 타라가 조금 더 극적인 장면을 통해 가족과도 화해하기를 바라면서 숨을 참고 페이지를 넘겼고, 책 페이지가 거의 남지 않았을 때쯤 깨달았다. 아 이건 소설이 아니구나. 회고록이었구나. 진짜 대가를 지불했고, 어쩌면 저자는 지금 현재도 괴로워할 수 있겠구나. 그 폭력적인 환경에서 우리는 쉽게 말할 수 있다. 당연히 그런 가족이랑은 관계를 끊어내야 한다고. 하지만 그게 쉽지 않고 인생이란, 가족이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란 것도 우린 속으로는 알고 있다. 그리고 글 마지막까지 그런 심정이 소설의 결말처럼 깔끔하게 정리되지 못했다는 인상, 이 모든 이야기가 타라 본인의 선택을 스스로에게 설득하는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슬프고 먹먹해지는 책이다.

이 책은 내가 3일 만에 읽은 것처럼, 저자의 엄청난 필력에 모든 장면들이 머릿속에 영사기가 재생되듯 묘사되어 회고록임에도 웬만한 소설책보다 훨씬 몰입이 좋았다. 그냥 재미 면에서도 추천하는 책이다. 경악과 슬픔, 그리고 그녀가 케임브리지 교정의 달빛 아래에서 캐리 박사와 얘기를 나누는 장면은 감동을 넘어 눈물이 났다. 저자 타라는 이 책으로 꽤 유명세를 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의 남은 인생에 평안과 행복만 있기를 간절히 빈다.

케임브리지여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학생 안에 가지고 있는 거예요. 학생은 순금이에요. 브리검 영으로 돌아가든, 산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든 그 본질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어차피 순금도 빛에 따라서는 덜 빛나 보일 때도 있으니까. 하지만 빛이 덜 난다면 그게 허상인 거예요.

자신이 누군지를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는 그 사람의 내부에 있어요. 스타인버그 교수는 이 상황을 〈피그말리온〉에 비유하더군요. 주인공은 좋은 옷을 입은 하층 노동자였어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기기 전까지는. 일단 그 믿음이 생긴 후에는 그녀가 무슨 옷을 입고 있는지가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됐지요.


「8번 출구」 - 가와무라 겐키

8번 출구

8번 출구라는 유명 인디 공포 게임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의 원작 스토리 소설이다. 아주 짧은 소설이며 영화를 재밌게 보아 소설까지 같이 읽게 되었다. 영화는 8번 출구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연출되느라 각 인물들의 배경이 생략되는 편인데, 그들의 배경과 주인공의 심리들을 자세히 알게 되어서 좋았다.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지니고 있는 자기 혐오, 미래에 대한 불안, 불안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한 인물의 죄책감이 (지옥에 비유되는) 지하철 통로에서 극대화되어 8번 출구에서 빠져나와 결국 본인의 선택으로 다시 구원받을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볼레로 음악과 주인공의 변화는 다시 봐도 감동이 있다. 나도 그 많은 죄책감에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을까? 어쩌면 반복되는 하루는 작품 속 8번 출구처럼 우리에게 계속 무언가 메시지를 주는게 아닐까?

그나저나 일본 사람들 본인들도 지하철역에서 많이 해메나보다. (ㅋㅋ…)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 유명한 프랑수아즈 사강의 대표 소설 중 하나. 여자 한 명(폴)과 남자 두 명(로제, 시몽)의 이야기다. 프랑스 소설 답게(?) 아주 뜨거우면서도 섬세하고 이 주인공들에게 우리는 얼마나의 똘레랑스를 발휘해야하나 고민이 되는 장면들이 있다.(…) 주인공인 폴의 맞바람 정도로 이야기를 치부할수도 있지만 아주 섬세한 묘사를 통해 폴의 심리를 이해하게 되며 시몽과의 뜨거운 사랑과 로제와의 관계에서 갈등하는 그녀를 통해 사랑이 얼마나 난해하며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인지 다시 한번 깨닫는다. 결말 마지막 장면에서는 나만 탄식한 것은 아닐 것이다.

작가가 마약 복용 혐의 재판에서 말한 유명한 명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라는 말 자체가 아주 파괴적인데, 그녀의 삶을 요약한 책 후반부 해설을 읽고 이 소설을 조금 더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 명언(?)은 이 소설 훨씬 이후에 했던 말이지만 그녀의 어린시절 비행(?)과 삶의 궤적을 보면 24살의 저자가 쓴 이 자기파괴적인 사랑을 하고마는 세 인물들의 이야기가 어쩌면 우리가 삶에서 한번쯤은 느꼈던 사랑이었기 때문에, 이 소설이 아직도 읽히고 있다고 생각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에서 물음표가 아닌 말줄임표(…)로 끝나는 이유는 관습에서 벗어난 일탈의 권유라고 한다. 우리에게 현재의 그 관습에서 벗어나라는 작가의 권유가 그러기 어렵다는 주인공의 결말을 보여줌으로써 더 강조되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섬세한 여성 심리 묘사를 읽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배움(?)이 있다. (연애를 책으로 배웠어요. - 엘리가 나를 놀리는게 보인다.)


「모든 것은 결정되어있다」 - 로버트 새폴스키

모든 것은 결정되어있다

블로그 후기를 작성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는 책. 자유의지는 없다라는 주장을 못박고 자유의지가 있다거나 어느정도는 제약이 있으나 자유의지는 있다라는 대부분의 양립주의자들이 펼치는 주장들을 하나씩 다루며 그 주장에는 무슨 오류가 있는지 깊게 다룬다. 쉬운 책은 아닌게 철학이나 사회 과학 교양서가 아니다. 저자 로버트 새폴스키는 스탠포드 유명 신경과학/생물학자로 그의 전작 “행동”에서 풀어내는 이야기와 비슷한 방식으로 “자유의지는 없다”에 집중해서 의도, 의지력, 카오스이론, 창발 그리고 양자 불확정성까지 다루며 광범위하게 “자유의지는 없다”라는 증거를 설명한다.

자유의지가 없다고 하면 대부분 숙명론 (내가 이러나저러나 운명/결과는 정해져있다.)을 생각할 수 있는데, 책을 읽어보면 이는 책에서 주장하는 결정론과 엄연히 다르다. 두 개 차이를 쉽게 설명하면 결정론은 원인을 통해 필연성을 설명하지만, 숙명론은 원인과 무관하게 결과가 미리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주 쉬운 예를 들면, 난 지금 이 글을 카페에서 쓰고 있는데, 내가 오늘 카페에 오거나 안오거나 이 책 리뷰를 썼을거라는게 숙명론, 카페에 갔기 때문에 집중되는 환경에서 이 글을 썼다는게 결정론(물론 잠을 충분하게 잤기 때문에 카페를 왔고, 잠을 충분히 자기 전에 일찍 자기로 했고, 일찍 자려고 마음 먹은 이유는 또 그전의 사건들과 연쇄적으로 연결되어있다는게 결정론의 핵심이긴 하다.)이다. 때문에 원인을 바꾸기 위한 노력은 무의미한게 아니며, 그 원인이 되는 환경과 시스템, 사회적 제도 등을 돌아보게 하는 관점을 가진다.

또한, 이 책을 읽고나면 스스로에게 주어진 환경에 대한 감사와 겸손, 나와 다른 인간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깊어진다. 도대체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왜 바뀔 의지가 없을까? 라고 생각했던 내가 저럴수 밖에 없어서 저러는구나. 나 또한 그럴 수 밖에 없어서 그러고 있지 않은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모두 다르기 때문이고 그 다름은 모두 다른 환경, 경험에서 왔기 때문이다. 결정론을 믿게 되면 조금 더 타인에 대한 관대함과 스스로에 대한 겸손, 나아가서는 원인과 환경을 바꾸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자유의지가 있다라는 생각 자체가 사람에 대해 얼마나 가혹해질 수 있는지, 스스로 바꾸지 못하는 모든 결정사항이 스스로의 의지의 결과라는 착각이 얼마나 이 사회를 병들게 하는지도 반대로 생각해볼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일 것이다. (이 논지는 다음 책인 “공정하다는 착각”에서도 이어진다.)

간만에 벽돌책이자 전반부가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지만 완독을 하고나니 상대적으로 다른 책들이 아주 수월해지는 효과가 있었다. 각 파트와 챕터 내용은 언젠가 다시 한번 더 읽고 제대로 다시 이해하고 싶다.

모든 것은 겹겹이 포개진 거북이이고, 쉬운 길과 어렵지만 올바른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 전두피질의 작동은 뇌의 다른 모든 것과 똑같이 1초 전, 1분 전의 결과물이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더 많은 의지력을 발휘하도록 스스로를 다그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곧 우리의 역사이므로 개인의 역사를 무시할 수는 없다.

자유의지의 부재를 진정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유전자, 태아기의 삶, 호르몬 수치 등의 결과일 뿐이다.


「공정하다는 착각」 -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모든 것은 결정되어있다’를 읽고 무조건 다음 책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의 책이다. ‘모든 것은 결정되어있다’보다 훨씬 이전에 나온 책이지만, ‘모든 것은 결정되어있다’에서 부분집합으로 다루는 사회 시스템에 집중하여 이 책이 나온 당시 트럼프 1기, 바이든 정부 시기의 미국 사회와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위에 강조되는 능력주의가 왜 또 다른 계급을 만들고 지금 사회 시스템이 공정하다는 착각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에 대해서 설명한다.

내용만 보면 사회복지 혜택을 늘리는 등의 좌파적인 논지를 주장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데 엘리트 주의가 된 민주당(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과 포퓰리즘으로 당선된 공화당(도널드 트럼프) 모두를 까면서 그저 저소득 계층을 낙인찍어 사회복지를 늘리는 방식이 왜 좋은 안이 될 수 없는지도 논하고 있다. 능력주의 시스템은 퇴색된 노동 가치, 소득이 기여를 반영한다는 착각 등 여러 부작용으로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민주주의를 약화시켰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주장에 여러 부분 동의하고, 개인으로서 사회적 시스템과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해 ‘모든 것은 결정되어있다’ - 로버트 새폴스키 책 만큼이나 좋은 교훈을 주나, 그가 이러한 시스템을 해결하기 위해 제시하는 솔루션들은 선뜻 공감하기는 어려웠고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현재 시스템의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 다양한 논의의 장이 필요할 것 같다.

특히, 한국은 능력주의가 더 극대화되는 사회적 시스템이 되었는데 무분별한 복지나 포퓰리즘이 아닌 점점 퇴색되어가는 노동 가치와 사람들의 좌절감, 사회 전반 여러 문제(출산율 등)을 해소하기 위해 이러한 논의가 조금 더 활발히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요즈음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공정하지 않다)가 당연시 되어 공정 사회를 향한 메시지 자체가 철없는 낭만의 목소리로 들리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또는 메시지는 사라지고 정치 진영 문제로 치부되어 버리는 느낌.

어려운 사회 주제는 훌륭하신 분들이 해결해주길 간절히 바라며, 한 개인으로서, 내가 이룬 모든 성취는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니며 나의 실패 또한 오로지 나의 능력 부족은 아닌 것에 위안을, 그들의 성공 또한 온전히 그들의 능력만으로 이룬 것이 아니며 그들의 실패 또한 100%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며, 항상 스스로의 겸손과 타인에 대한 이해의 태도로 삶을 살아가자.


나가며

2분기는 독서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바뀐 기간이었다. 1분기에 글을 쏟아내듯이 이런저런 글을 쓰고 AI에 절여져 내 사고를 못하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인풋이 부족하다고 느껴 독서에 조금 더 집중을 하려고 했다. (덕분에 시간만 나면 책을 보고 있는 나를 보고 엘리가 나를 허생이라고 놀리기에 이르렀다.) 확실히 리뷰를 쓰다보니 당시에 리뷰를 쓰거나 그때그때 독서 노트를 작성한 책들은 금방금방 리뷰를 작성했는데 3개월 동안 읽은 책들의 리뷰를 모아쓰다보니 4월달즈음 읽었던 책들은 꽤 가물가물하다. 그리고 이북과 달리 하이라이트가 자동 저장되지 않는 오프라인 책은 상대적으로 리뷰 남기기가 어려워 그때그때 어떻게 정리를 할지 지금 고민 중에 있다.

모든 책이 좋았지만 추천 책 top 3는 삼체 시리즈, 배움의 발견, 모든 것은 결정되어있다 이다.

독서하는 시간을 늘려나가며 이제 또 어떤 글을 어떻게 쓸지도 계속 고민해보고 있다. 글을 덜 읽을 땐 AI가 채워주는 문구나 교정해주는 문장도 덥석덥석 물어다가 금방금방 글을 썼는데 오히려 그렇게 쓴 글들은 모두 폐기처분해버려서 요즈음 블로그 포스팅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한동안 일이 바쁘기도 했고) 독서 리뷰 주기도 월단위로 좀 더 잦게 가져가볼까도 고민 중이다.

Tony Cho profile image

About the author

Tony Cho

Indie Hacker, Product Engineer, and Writer

제품을 만들고 회고를 남기는 개발자. AI 코딩, 에이전트 워크플로우, 스타트업 제품 개발, 팀 빌딩과 리더십에 대해 쓴다.


Share this post on:

반응

여기까지 읽어주셨다면, 한마디 남겨주세요. 경험, 반론, 질문 뭐든 환영합니다.

댓글

댓글을 불러오는 중...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Next Post
'브레이크넥'을 읽고 (공학자의 나라, 법률가의 나라, 그리고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