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들수록, 당신이 사라진다
철이 들수록, 당신은 사라진다.
사회성을 잘 갖춘 사람은 정말 혁신할 수 없는 걸까?
내 직관이 “이건 좀 다른데”라고 말하는데도 어김없이 고개를 끄덕인 순간이 있다. 나도 그렇게 자주 끄덕인다. 매번 끄덕이다 보면, 만들고 싶었던 미래는 사라지고 누군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만 남는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자기 안의 가장 거친 부분을 차곡차곡 잘라내는 일이다.
예전에 일론 머스크 책을 읽고 정리한 글이 있다. 거기 이런 문장을 옮겨 적었다.
“때때로 위대한 혁신가들은 배변 훈련을 거부하고 리스크를 자청하는 어른아이일 수 있다. 무모하고,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고, 때로는 해를 끼칠 수도 있다. 그리고 미치광이일 수도 있다.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을 만큼 미친 사람.”
거친 표현이다. 그런데 이 거친 표현이 가리키는 게 있다. 어른의 매끈함을 갖추는 동안 같이 죽는 게 있다는 것.
마이크 메이플스 주니어는 《패턴 파괴자들》에서 답한다. 우리가 사회에 순응하도록 설계된 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기본값이라고.
“가족, 학교, 또래, 미디어는 우리가 무엇을 욕망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계속 가르친다. 생물학적으로도 우리는 또래의 인정을 구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거절은 아프고, 대세를 따르는 편이 인지적으로 덜 피곤하다.”
순응은 약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빠진다. 신호는 이렇다.
- “주변 사람들이 다 동의하니까” 자기 직관을 접는다.
-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같은 길을 간다.
- “상대가 원한다고 했으니까” 검증 없이 따른다.
- “분위기 깨기 싫어서” 중요한 반대를 삼킨다.
- “이 분야에서는 원래 이렇게 하니까” 자기 메시지를 바꾼다.
다섯 줄 중 한 번이라도 자기 모습이 보였다면, 당신은 평범한 사람이다. 모두가 이렇게 산다. 나도 자주 이 다섯 줄 안에서 산다.
미치광이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반항적인 척하라는 것도, 사람을 함부로 대하라는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 기준에 맞추느라 자기가 원래 들고 있던 게 뭐였는지 잊지는 말자는 거다. 자기 기준과 충돌하는 순간에는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NO는 사람을 밀어내는 말이 아니다. 자기가 만들고 싶었던 걸 끝까지 만들기 위해 들고 있는 거의 유일한 도구다.
무서운 건 그다음이다. 그 한계가 자기 사고방식 안에 너무 깊이 박혀 있어서, 자기는 그게 한계인지도 모른 채 산다는 점.
“가장 근본적인 한계는 타인의 규칙을 기준삼아 자신의 성공을 정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