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얼마 전 개발자 한 분이 본인 커리어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내가 이전 회사에 신입으로 채용했던, 이제는 4년차 백엔드 개발자였다. 나보다 먼저 퇴사를 했기에, 이왕이면 즐겁게 일했으면 하는 진심으로 이런저런 조언을 드리려고 했다.
그분의 말은 이랬다. 본인이 회사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에 최선을 다하고 나름 그 안에서 성장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해당 프로젝트가 엎어지면서 개발팀 내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했다고 한다. 원인은 경영진의 사업 판단 실패에 있지만 AI라는 핑계 (생산성 최적화, 비용 최적화)로 책임은 그저 열심히 최선을 다했던 직원들이 지게 생겼다는 거다. 팀장이 어떻게든 그 사태를 막기 위해 새 프로젝트를 기획해서 상황을 모면하고, AI를 활용해서 실제 비즈니스 KPI에 기여하는 프로젝트를 부랴부랴 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이 상황 자체가 본인은 억울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된다는 것이었다.
“아니, 저는 진짜 최선을 다했는데 프로젝트가 수익화에 실패했다고 갑자기 구조조정을 한다는 거에요. 어이가 없습니다. 전 사실 AI에 크게 관심있는 개발자가 아닌데, 지금 하네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해서 그걸 하고 있어요.”
나도 참 고약한 게, 그냥 한번쯤은 공감하고 조언으로 넘어갈 뻔한데 얘기를 듣자마자 대뜸 가혹한 말을 해버렸다.
“우리 자신의 게으름은 결국 우리 자신이 감당하게 된다. 본인도 아시잖아요?”
그리고 곧바로,
“월급 받는 직원이 본인에게 주어진 일만 하면 된다는 그런 순진한 생각은 이제 버리셔야 돼요.”
사실 이 말을 하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건 그분이 아니라 나였다. 이전 직장에서의 나. 같은 회사에서 다른 위치에 있던 두 사람 (그분은 주니어, 나는 CTO)이 그 시기에 같이 겪었던 어려움에 공감대가 있었다. 그분을 꾸짖은 게 아니다. 내가 뒤늦게 배운 교훈을, 너무 거칠게 꺼낸 셈이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자. 구조조정의 책임이 개인에게 있다는 말은 아니다. 사업 판단을 틀린 건 경영진이고, 그 비용을 직원이 감당하는 건 분명 개인 입장에서 가혹하다. 다만, 커리어의 안전을 경영진의 판단과 회사의 선의에 맡겨두는 것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말 이다.
그렇게 내가 차근차근 설명하니 그분도 점차 고개를 끄덕이셨다.
AI가 원인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AI 시대에 커리어를 고민하는 사람은 나도 포함해서 이 분만은 아닐 것이다. 최근의 일자리 위협은 더 이상 개발자들만의 고민도 아닌 것 같다. AI가 발전함에 따라 개발자 시장이 제일 먼저 칼바람을 맞았고, 그걸 지켜보던 다른 직무의 사람들이 느끼는 커리어적 위기감은 우리 모두를 옥죄고 있다.
코로나 전후로 스타트업씬엔 자금이 넘쳐 흘렀고, 수익보다는 적자를 내도 트래픽 성장이 트렌드였던 시기. 개발자 초봉 6,000만원 기사가 나며 개발자들을 귀한 손님 모셔가는 (그렇게 귀하지 않은 개발자들 포함) 현상이 일어났다. 부트캠프만 나오면 웬만한 스타트업 입사가 가능했고, 투자를 받아 현금이 있는 회사들은 사람을 급격하게 늘렸다. 그러다 시장에 자금이 마르자, 과채용된 인원과 망한 회사 출신 인력들이 쏟아져 나왔다.
23년에 채용 인터뷰를 하면서 그 광경을 직접 봤다. 잘나가던 스타트업이 하루 아침에 대금 납부 불능, 임금 체불에 빠졌고, 지원자들 중 소위 “망한” 회사 출신이 꽤 있었다.
지금의 냉랭한 채용 분위기가 AI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글쎄. 모든 현상은 인과관계를 조금 더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여전히 그 시기에 얼어붙은 스타트업 투자 시장과, 회사들이 망하면서 생존한 회사들의 치열한 인재 검증과 비용 최적화의 이유가 더 크지 않을까 싶다. 분위기에 휩쓸리듯 과채용으로 피를 본 회사들이 “정말로 개발자가 그만큼 필요했나”라는 빨간약을 먹은 것뿐이다. 그때 망한 회사들은 사업을 사업으로 대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고, 구조조정을 단행한 회사들은 빨리 정신 차려서 원래 궤도로 다시 돌아온 회사들인 것이다. 개인의 입장에서 구조조정은 가혹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결정이었다.
숫자로 봐도 이 변화는 AI 이전에 이미 시작됐다. 금융위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 국내 벤처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42% 줄었고,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집계에서도 2023년 전체 스타트업 투자금이 전년 대비 52%가량 감소했다. 2021~2022년의 채용 호황은 코로나 이후 유동성 과잉이 만든 예외적인 구간에 가까웠고, 2023년의 냉각은 그 예외가 끝난 뒤 찾아온 정상화에 가까웠다. 그러니 지금의 채용 한파를 AI 하나로 설명하는 건 순서를 거꾸로 읽는 일일 수 있다.
AI가 개발자 시장을 갑자기 망가뜨린 게 아니다. AI는 이미 무너지고 있던 고용 계약의 민낯을 더 빨리 드러낸 것뿐이다.
누구 잘못일까? 내 생각엔 그저 각 시점에 각자가 했던 역할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VC는 남아도는 펀드를 투자해야 했고, 경영진은 기회가 될 때 최대한 투자를 받아야 했다. 시장 분위기는 너도나도 과채용을 하며 성장을 부르짖던 시기였고, 부트캠프는 그 수요에 맞춰 비전공자 출신 개발자들을 대거 양성했다. 다만 가장 안일했던 사람은 당시 회사들의 경영진이라고 본다. 결국 그들의 사업 실패가 시장이 얼자마자 고스란히 개인 직원들이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R&R의 시대, 스페셜리스트의 시대
당시 몇몇 지원자들과 인터뷰를 들어가 보면, 그들은 본인에게 주어진 역할과 직무에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경영진의 오판과 수익화 실패, 추가 투자 유치 실패 등으로 어쩔 수 없이 퇴사하게 되었다는 말을 공통적으로 하고 있었다. 맞는 말이다. 나같아도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특히 한 시리즈 C 스타트업에서 구조조정된 어느 한 지원자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제 직무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깊이 있는 테크 스택을 다루기도 했고, 팀원들의 코드 리뷰도 적극적으로 하는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개발했던 프로젝트가 정리가 되었고, 저희 팀은 1순위 구조조정 대상이 되었습니다. 조금 더 열심히 했으면 남지 않았을까 라는 고민을 많이 했었고, 제가 QA를 가끔 누락하는 실수를 해서 피드백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부분이 조금 제 약점이었고, 저는 그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시스템을 만들어서 자동화하고, 제 스스로도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서 항상 꼼꼼하게 체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정도면 훌륭하다. 구조조정이 그분의 문제는 아니었다. 약점을 발견했을 때 시스템으로 메우고 체크리스트까지 만든 사람이다. 직무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문제는 그 말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문제는 그 말이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기존의 직업은 직무를 명확히 한다. 특히 스타트업 씬에서는 직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잡부가 되는 것을 경계하는 조언이 많다. 이건 개인을 넘어 조직 간의 소통에서도 드러난다. 기능 조직 단위로 분리되어 일하는 많은 기업에서 조직 간의 책임 떠넘기기, “그건 저희 R&R이 아닌데요”라는 문장을 수시로 듣게 된다.
CTO 시절 어느 밤이 기억난다. 주니어와 시니어가 같이 결과물을 만드는 프로젝트였고, 나도 같이 밤늦게까지 업무를 진행했다. 그 시니어와 둘이 남아 결과물을 보며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자, 대뜸 이렇게 답했다.
“그건 제 R&R이 아닌데요. 주니어가 했던 부분이라 저는 잘 몰라요.”
속으로 신경질이 났다. 틀린 말은 아니다. 분명 그 부분은 주니어가 짠 코드였다. 하지만 내가 시니어에게 기대했던 역할은 책임이었다. 그 사람에게는 두 번 다시 책임을 부여하는 자리에 대한 역할을 주면 안 되겠다고 결정한 날이기도 했다.
물론 나도 그렇게 일했던 시기가 있다. 처음 1년을 그렇게 일했다. 외부인으로서 잠깐 도와주는 입장이라고 생각하며 임시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했고, 사실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고객 가치에 대한 깊은 관심보다 1년 안에 주어진 프로젝트를 끝마치는 게 우선이었다. 그때는 시장이 좋을 때라 사람들을 채용하고 팀을 키우는 데 집중했던 것 같다. 내가 그때 조금 더 책임을 가지려고 했으면 어땠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조금 더 비즈니스 가치에 관심을 두었더라면 더 제대로 일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고, 동시에 더 빨리 퇴사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양가적인 관점이 항상 존재한다.
시장에서는 제너럴리스트보다 특정 직무에 특화된 스페셜리스트가 시장에서 선호되어 왔다. 스타트업 씬에서도 대부분의 리더십 레벨에서 그들이 갖지 못한 스페셜리즘에 대한 환상이 항상 존재한다. 나도 그랬고. 나보다 훨씬 깊게 파고드는 실력 있는 개발자들에 대한 동경이 늘 있었다.
다만 분명히 해두자. 내가 본 환상(가짜)은 ‘스페셜리즘 그 자체’가 아니라 ‘전문성 뒤에 숨는 태도’였다. 진짜 깊은 전문성을 가진 사람은 자기 결정이 비즈니스에 어떻게 닿는지를 본다. 문제는 자기 관심사에만 파고들면서 어른의 사정 (비즈니스나 고객 가치)은 다른 사람의 영역이라고 미루는 사람들이었다. 한 마음 한 뜻으로 정렬되어 승리를 위해 달려가도 모자랄 판에, 그들을 달래가며 일을 해야 하는 심정이란. 좋아하는 것만 하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의 모습과 같았다.
그리고 사수가 없는 회사에 가면 안 된다고도 조언한다. 직무 성장을 할 수 없기에. 그런데 지금 시장에서 일잘하는 사람을 잘 살펴보면 사수 없이 성장한 사람들이 많다. 사수가 없는 건 원인이라기보다는 그들의 특징 중 하나다. 심지어 AI 시대의 사수의 존재는 내가 의존하게 되는 하나의 블로커가 될 수밖에 없다. 이건 이렇게 해야한다. 저건 저렇게 해야한다. 그런 조언들이 초심자의 발전에 발판을 삼을만 하지만 그들도 AI 시대는 처음이고, 책임을 끝까지 다 한 사람이 적다. 아마 “R&R”을 강조하면서 그런 것까지 하면 안된다고 조언하는 사수들이 많을 것이다. 사수의 조언은 대게 이제 구태의연한 것이 되었다. AI 덕분에 직무에 제한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수의 존재유무보다 더 중요한 팩터는 환경이다. 내가 하는 일이 곧바로 성과로 연결되는 환경. 그리고 내 직무 분야가 아닌 다른 팀원들, 리더십이 성과에 대한 피드백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환경. (사수의 How to 피드백이 아닌 What, Why를 피드백 받을 수 있는 환경) 당연히 제일 좋은 건 직접 고객을 만나며 비지니스를 하는 거다. 매일매일 바닥을 찍으면서 성적표를 받는 것만큼 빠른 성장의 길도 없다. 개발자라면 필요한 개발을 다 해야 할 거고 PM에 마케팅까지 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일의 본질이다. 진짜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
R&R은 책임을 명확히 하기 위한 도구이지, 책임을 피하기 위한 방패가 아니다.
아직도 “그건 제 R&R이 아닌데요.” 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당신의 직업이 앞으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과 같을 수 있다.
AI는 스페셜리즘을 흡수한다
쉽게 말하면, “돈 버는 건 사장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난 그냥 시키는 것만 열심히 할래” 같은 순진한 생각을 하면서 월급 받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는 얘기다. 스페셜리즘의 대부분을 AI가 흡수했기에, 생산을 넘어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정말로 실제 가치와 연결되는가를 개인이 고민하지 않으면 더 이상 생존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어버렸다. 맞다. 가혹하다. 한낱 월급쟁이가 이제 그런 것까지 고민해야 되나 라고 되물으면, 어쩔 수 없다, 이제 그래야만 살아남는다고 명확히 다시 답해줄 수 있다.
전문성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깊은 전문성은 더 중요해진다. 다만, 당신의 그 전문성이 고객 가치와 비즈니스 결과로 연결되지 못하면, AI 시대에 당신은 가장 먼저 정리 대상이 된다.
Meta의 Mark Zuckerberg는 올해 1월 Q4 어닝콜에서 이렇게 말했다.
“We’re starting to see projects that used to require big teams now be accomplished by a single very talented person. Our north star is building the best place for individuals to make a massive impact.” “예전에는 큰 팀이 필요했던 프로젝트가 이제는 정말로 뛰어난 한 명에 의해 끝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의 북극성은 개인이 거대한 임팩트를 낼 수 있는 최고의 장소를 만드는 것이다.”
(Meta Q4 2025 Earnings Call, 2026-01-28)
10명이 하던 일을 한 명이 한다는 건, 단순한 효율의 문제가 아니다. 큰 팀이 나눠 갖던 판단·조율·검증·배포 이후의 책임까지— 그 한 사람에게 압축된다. 산출물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이 짊어지는 무게가 커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채용 기준이 quantity(양)에서 quality(질)로 옮겨간다. AI를 도구로 쓸 줄 아는 건 이제 기본값이고, 그 위에서 결과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가 진짜 질문이다.
결국 살아남는 건 (제너럴리스트가 아니라) 자기 전문성을 End-to-End 결과와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이다. 깊은 전문성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 전문성이 비즈니스에 어떻게 기여하고, 고객에게 어떤 가치로 얼마나 전달되는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 그게 살아남는다.
Google의 사례는 이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Sundar Pichai는 2024년 3분기 어닝콜에서 Google의 새 코드 중 25% 이상이 AI로 생성되고 엔지니어가 검토·승인한다고 밝혔는데, 1년 반 만에 그 비율이 75%까지 올라갔다. 여기서 핵심은 “AI가 코드를 쓴다”가 아니라 “AI-generated and approved by engineers”라는 부분이다. 작성의 중심은 AI로 이동하지만 승인과 책임은 엔지니어에게 남는다는 뜻이다. 코드는 AI가 만들 수 있지만, 그 코드를 제품에 태우고 사고가 나면 설명해야 하는 사람은 여전히 엔지니어다. 개발자의 일은 작성자에서 승인자, 검증자, 오케스트레이터로 이동하고 있다.
AI는 전문성을 없애는 게 아니라, 전문성만 가진 사람의 안전지대를 없애고 있다.
Taste와 결정 능력도 충분하지 않다
“AI가 이런 걸 해주니까 사람은 이런 걸 해야 합니다”라는 프레임워크로 사람의 역할을 설명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말하는 걸 들어보면 대부분 (나도 앞서 강조했던) Taste나 결정 능력 같은 것을 얘기한다. 근데 이건 AI와 사람을 동일선상에 두고 비교하는 프레임이다.
그 말은 곧, Taste나 결정도 어느 레벨, 어느 섹터에선 충분히 사람 역할을 대체할 수도 있고, 저수준(low-level)에서는 이미 그렇게 되고 있다는 거다.
비슷한 고민을 ThePrimeagen도 했다. 20년차 베테랑 개발자, 6,000일을 프로그래밍하고 14년을 Vim에 바친 사람. 최근 컨퍼런스 발표에서 본인이 6개월간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고 고백했다. AI가 코드를 생성하는 시대에 “내 가치는 어디 있는가”를 자문하면서, 그는 두 가설을 차례로 지웠다. 취향(taste)? 아니다. 코드 양? 아니다. 그가 도달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한 줄 코드의 비용이 극적으로 떨어졌다면, 올바른 한 줄 코드의 비용은 극적으로 상승한다. 모든 것이 무료가 되면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그때 올바른 선택을 내리는 것이 훨씬 어려워진다.” (ThePrimeagen, “I suck”, 2026-05-02)
이게 추상적인 논리만은 아니다. 양쪽으로 증거가 있다. GitHub Copilot 실험에서는 AI를 쓴 개발자가 과제를 55.8% 더 빠르게 끝냈고, Microsoft와 Accenture 개발자 현장 연구에서도 주간 pull request 수 증가가 관찰됐다. 반대 방향의 증거도 있다. METR의 2025년 연구에서는 숙련된 오픈소스 개발자들이 자신이 잘 아는 코드베이스에서 AI를 썼을 때 오히려 작업 시간이 19% 늘었다. 이 차이가 중요하다. AI는 산출 비용을 낮추지만, 맥락 이해와 품질 검증, 올바른 선택의 비용까지 자동으로 낮춰주지는 않는다.
Taste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AI가 만든 1,000개의 옵션 중 올바른 하나를 고르는 책임이 더 무거워질 뿐이다.
당장 내가 잘하지 못하는 디자인이나 빠르게 작업해야 하는 프로토타입에서 AI는 내가 세세한 결정을 정해주지 않아도 빠르게 결과물을 만든다. 프로토타이핑하는 데 바이브 코딩을 적극적으로 하자는 얘기는 이제 AI에 회의적인 사람들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은 프로토타이핑 수준에서의 Taste, 결정이지만, 충분한 도메인 데이터와 에이전트가 발전하면 더 높은 수준으로도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간단한 프롬프트 한 줄로 MVP 정도는 바이브 코딩으로 코드 없이 던지는 정도의 작업, 그 안에 생각보다 많은 Taste (물론 평균의 확률이지만)와 결정이 마이크로하게 들어가 있다. 차원 자체가 아직 작을 뿐이다. 그게 모든 분야에서 모두 고도화되긴 힘들겠지만, 특정 분야나 내가 잘하지 못하는 분야에서는 충분히 나의 Taste와 결정이 대체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내 워크플로우에서도 이런 변화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 디자인 시안 한 장을 시작할 때 색상 하나, 레이아웃 하나에 대한 내 결정을 AI에게 맡기는 비중이 점점 늘어난다. 코드 리뷰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PR을 내가 한 줄씩 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1차 리뷰를 AI가 맡는다. 잡아내는 깊이가 내가 처음 한 번 본 것보다 종종 더 낫다. 아키텍처 패턴을 고를 때도 그렇다. 내가 어느 패턴이 좋을지 한참 고민하는 동안, AI는 같은 결정을 빠르게 끝내고 트레이드오프까지 정리해온다. 처음에는 “이건 내가 더 잘하니까 내가 해야지”라고 생각했던 영역들이, 시간이 지나니 “사실 내가 결정하든 AI가 결정하든 결과 차이가 미미하네”로 바뀐다. 차이가 줄어든다는 건 곧, 그 차원에서는 내 Taste가 AI에게 흡수되고 있다는 뜻이다.
사람의 역할을 AI와 기능적으로 비교해서는 안 된다. AI가 못하는 것은 더 예쁜 선택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를 책임지는 것이다.
사람의 역할은 책임이다
사람의 역할은 하나다. AI는 절대 못하는 것. 책임지는 것이다.
AI가 훌륭하게 일을 해내든, 사고를 치든 결국 그 책임은 사람이 지게 되어 있다. 모든 걸 다 가져가도 AI에게 책임을 지우지는 못한다.
이건 추상적인 말이 아니다. Air Canada의 챗봇이 고객에게 잘못된 환불 정보를 제공한 사건이 있었다. 회사는 챗봇을 별도의 주체처럼 보려는 주장을 했지만, 캐나다 분쟁조정기관은 챗봇도 회사 웹사이트의 일부이며, 정보가 정적 페이지에서 나오든 챗봇에서 나오든 그 정보에 대한 책임은 회사에 있다고 판단했다. AI가 답변을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답변을 고객에게 노출하기로 결정하는 책임은 여전히 사람과 조직에 있다.
최근에 어떤 분과 개발자 채용에 대한 커피챗을 하면서 다시 깨닫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채용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결국 그분들이 찾는 사람은 책임질 수 있는 사람, 즉 책임질 수 있다고 신뢰를 주는 사람이었다.
AI가 책임을 못 진다는 건 기술적 한계가 아니다. 본질적 차이다. AI가 더 발전해도 책임은 영원히 사람의 영역이다. AI를 활용해서 작은 성공을 했다고 채용을 늘릴 필요는 없다. 하지만 성공의 크기가 커지면 결국 신뢰할 만한 사람, 책임질 수 있는 사람에게 일을 위임할 것이다.
물론, Taste, 결정, 원리 이해, 커뮤니케이션은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그것들은 책임을 수행하기 위한 능력이지, 책임의 대체물이 아니다.
나도 2년간 재무 흐름이나 사용자 가치보다, 내 직무인 기술 개발과 주어진 프로젝트에 집중했다. 나의 R&R이 거기 있다고 생각했고, 매달 들어오는 매출과 비용 같은 건 재무팀과 경영진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2년째 되던 시기에 회사가 한 번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 광경을 옆에서 보면서 나는 그제서야 재무팀에 가서 매달 정리되는 재무 자료를 보내달라고 했다. 그때 재무팀장이 나를 살짝 의아하게 봤던 표정이 기억난다. CTO가 왜 이걸 이제 와서 보냐는, 그런 표정.
내가 만든 산출물이 회사의 어떤 숫자와 연결되는지, 그게 흔들릴 때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보지 않고 2년을 일했다. 그 2년의 빈자리가 결국 내 책임이었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다. 기술 결정을 잘했다고 자부했던 시기였는데, 사실은 그 결정이 회사의 어떤 숫자도 책임지지 않는 선택이었다. 좋은 코드를 짜고 좋은 아키텍처를 그렸지만, 그게 회사가 다음 분기를 살아남는 데 어떻게 기여하는지에 대해 나는 무지했다. 무지가 무책임의 다른 이름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책임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단순히 주어진 작업을 끝내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결과가 고객에게 어떤 가치로 도달하는지를 묻는 사람이다. 그 가치가 회사의 어떤 지표와 연결되는지를 묻는 사람이다. 일이 잘 안 됐을 때 “저는 시킨 대로 했습니다”가 아니라 “제가 무엇을 놓쳤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다. AI가 만든 결과물을 검토하고, 배포하고, 사고가 나면 수습하는 사람이다.
반대로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의 행동 패턴은 이렇다. 본인에게 주어진 R&R에만 최선을 다한다. 비즈니스나 프로젝트의 방향은 다른 파트에서 알아서 정해줄 거라고 생각한다. 비즈니스나 고객 가치, 사용자 시나리오에 관심이 없다. “그래서 이것만 하면 되는 거죠?”라고 묻고, 그 안에서만 산다. outcome(성과)이 안 좋아도 본인의 output(산출물)을 포기할 수 없다. 본인의 output과 본인을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이게 내 작품이다”가 “이게 내 책임이다”보다 앞선다.
한 사람은 회사가 흔들릴 때 자기 위치를 다시 그린다. 다른 한 사람은 흔들려도 R&R 안에 가만히 있다. 시장이 좋을 때는 둘이 똑같아 보인다. 시장이 얼면 그제서야 갈린다. 그 시기가 바로 23년이었고, 그 시기가 (어쩌면 더 가속화된 형태로) 다시 지금이다.
R&R은 종말을 맞은 게 아니다. 직무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내 직무가 End-to-End로 비즈니스에 어떻게 기여하고 고객에게 어떤 가치로 얼마나 전달되는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그 책임까지 지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제 당신의 스페셜리즘은 AI에게 흡수될 것이다.
그래서 개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자기에게 던져볼 질문 다섯 개.
1.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어떤 고객 문제를 해결하는가? 가장 기본이고 가장 자주 막힌다. 답을 못하면 내 일은 회사 내부에서만 의미가 있는 일이 된다. 외부 고객의 어떤 결핍과도 연결되지 않은 일은 시장이 어려워질 때 가장 먼저 정리된다.
2. 이 일이 어떤 비즈니스 KPI와 연결되는가? 한 단계 더 들어가는 질문. 내 일이 매출, 비용, 리텐션, 어느 숫자를 어떻게 움직이는지 한 줄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못 한다면, 그건 회사가 내 자리를 어떻게 평가할지 모른다는 뜻이다.
3. 내가 만든 결과가 실제로 쓰였는가, 그리고 그게 실패했을 때 원인을 3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배포한 게 아니라 쓰인 것. 만든 게 아니라 도달한 것. 그리고 잘 안 됐을 때 그 원인이 남 탓 없이 3문장으로 정리되면, 그게 다음 결정의 변수가 된다. 안 되면 그저 운 나쁜 사건으로 남는다.
4. AI를 써서 더 많이 만드는 것보다, 더 빨리 검증하고 있는가? AI 시대의 가장 큰 함정. AI는 산출물을 폭발적으로 늘려주고, 그래서 검증 없는 산출물도 같이 폭증한다. 책임지는 사람은 양이 아니라 검증의 속도에 자원을 쓴다.
5. 내 직무의 경계 밖이지만 결과에 중요한 일을 회피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건 내 R&R이 아닌데요”의 변종. 결과에 중요한데 내 직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손을 떼는 순간, 그 결과의 책임도 같이 떨어져 나간다.
내가 가장 자주 던지는 질문은 위의 첫 두 개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어떤 고객 문제를 해결하는가, 그리고 이 일이 어떤 비즈니스 KPI와 연결되는가.” 이 두 질문에 답이 막히면, 그 일은 내가 책임지지 못하는 일이다. 그러면, 일을 멈추거나, 답을 찾거나, 둘 중 하나를 해야 한다. 어느 쪽이든 그게 책임이다.
산출물 생산자에서 결과 책임자로, Maker에서 Closer로 자리를 옮겨야 하는 시대다. 이전 글에서 말한 Maker→Closer가 그 얘기다. 도구는 모든 사람이 쓴다. 다만 그 도구로 만든 결과를 끝까지 짊어지는 사람과, 도구를 잘 썼다는 사실에서 멈추는 사람의 거리가 점점 벌어진다.
마무리
이 글에서는 오로지 개인의 관점에서 우리가 AI 시대에 어떤 역할로 커리어에 임해야하는가를 논했다. 아마 개인들은 이 글을 읽고나서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아니 그렇게 책임을 다하면 뭐하나 수익은 회사가 다 가져가는데. 맞는 말이다. 우리의 생존 커리어와 함께 기업들의 보상 체계도 함께 변하지 않으면 소위 말하는 잡부나 노예로 일하라는 조롱으로 이 글이 변질될 수 있다. 그래서 내 글은 AI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개인의 커리어를 같이 고민하는 글인 동시에 앞으로 인재를 채용해야하는 성장하는 기업 모두를 위한 글이기도 하다. 당신들이 원하는 ‘책임’을 지는 인재를 원한다면 보상 체계도 그들을 위한 대우도 기존과는 달라야한다. 그런 인재들이 많을수록 당신의 기업은 AI 시대에 발전에 발맞춰 빠르게 성장할 것이다.
책임을 지고 고객 가치를 생각하고 필요한 모든 일을 하는, 제네럴리스트로 일하는 사람들은 어느 시점에 제대로 가치를 평가받지 못했다. 하지만, 스페셜리즘이 AI에게 점점 흡수되고 있는 시대에 그들의 가치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지금 스페셜리즘이 모두 사라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유통기한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Anthropic은 채용 페이지에 이렇게 적었다.
“When it comes to our mission, none of us are bystanders. We each take personal ownership over making our mission successful.” “우리의 미션 앞에서 우리 중 누구도 방관자가 아니다. 각자가 미션을 성공시키는 데 개인적인 책임을 진다.”
이건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Anthropic이 채용 페이지에서 공개적으로 강조하는 기준이다. 그들이 찾는 사람은 단순히 주어진 일을 잘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미션의 성공을 자기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AI를 가장 잘 만드는 회사가 직접 박은 채용 기준이 ownership이다.
우리 자신의 게으름은 결국 우리 자신이 감당하게 된다. 당신을 진실에서 외면하게 하는 게으른 본성이, 당신의 존재를 위협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개인 입장에서는 사실 정말로 어려운 시대이다. 특히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하는 입장에서는 가혹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며칠 전 NYT Sunday Opinion에 Jasmine Sun 기자가 이런 한 줄을 적었다.
“Most people I know in the A.I. industry think the median person is screwed, and they have no idea what to do about it.” “내가 아는 AI 업계 사람들 대부분은 평범한 사람은 망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른다.”
(Silicon Valley Is Bracing for a Permanent Underclass, NYT 2026-04-30)
실리콘 밸리는 그동안 rogue AI 같은 거대한 악몽을 경고해왔다. 정작 그들이 마주한 진짜 악몽은, 평범한 사람들이 자동화로 경제적 레버리지를 잃는 시나리오다. AI를 만드는 사람들조차 답을 모른다.
AI 시대에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동을 다시 정의하고 기본 소득을 실험하고 정책으로 사람들을 보호해야할까? 모르겠다. 사회적 합의와 논의는 내가 감히 논할만한 주제가 아니라 말을 아끼겠다.
하지만 답이 없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기업에서 애초에 그만큼 개인 직원에게 책임을 지우려면 그만큼의 보상도 지불해야 한다. 그게 한 번에 갖춰질 리도 없다. 다만, AI는 본질을 가속화한다. 내가 외면했던 진실을 빨리 마주할수록, 그 다음의 길도 빨라진다.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AI는 우리의 일을 대신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책임까지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AI 시대에 가장 귀한 사람은 더 많이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이다.
References
- 금융위원회, “2023년 상반기 벤처투자 동향 보도자료”
- Platum, “2023년 스타트업 투자금 52% 감소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집계)”
- Google, “Alphabet Q3 2024 Earnings, CEO Sundar Pichai’s remarks”
- Google, “Cloud Next 2026, Sundar Pichai keynote (75% AI-generated and approved by engineers)”
- Meta, “Q4 2025 Earnings Call Transcript (Mark Zuckerberg, 2026-01-28)”
- Sida Peng et al., “The Impact of AI on Developer Productivity: Evidence from GitHub Copilot (arXiv 2302.06590)”
- METR, “Measuring the Impact of Early-2025 AI on Experienced Open-Source Developer Productivity (2025-07)”
- ABA Business Law Today, “BC Tribunal Confirms Companies Remain Liable for Information Provided by AI Chatbot (Moffatt v. Air Canada)”
- ThePrimeagen, “I suck (2026-05-02)”
- Jasmine Sun, “Silicon Valley Is Bracing for a Permanent Underclass (NYT Opinion, 2026-04-30)”
- Anthropic, “Careers (Mission & Values)”
- flowkater.io, “AI Native Engineer”
- flowkater.io, “조직에 Claude Code를 설치한다고 AX가 되지 않는다”
- flowkater.io, “3, 4월 회고 (개발자 채용 커피챗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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