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근데 이제 알게 된 거죠. 아, 내가 너무 말을 잘하는구나. 그래서 같은 아이디어도 팀원들로 하여금 흥분되게 만드니까 잘못된 아이디어를 자꾸 몇 년을 투자하게 만들었었고, 잘못된 판단을 하는 주제에 내가 맞다고 생각하고.”
토스 이승건 대표의 이 인터뷰를 처음 접했을 때, 한동안 멍하니 화면을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지나고 보니 나 역시 그런 리더였다. 그는 이어서 말한다. “성공하지 않으면 결국은 팀원들에게 너무 안 좋은 경험이구나.” 그리고 덧붙인다. “아프지만 필요한 얘기를 할 때 개인도 기업도 크는구나… 받아들이는데 5년이 걸렸던 것 같아요.”
이 문장들을 읽으면서 뼈저리게 공감했다. 성공한 기업가의 회고라기보다, 수많은 실패를 겪은 리더의 솔직한 고백처럼 들렸다. 우리는 흔히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함정에 빠진다. 팀원들을 사랑하니까, 그들이 상처받을까 봐, 혹은 내가 나쁜 사람이 되기 싫어서 ‘아픈 소리’를 아낀다. 그런데 그 결과가 무엇인가? 조직은 서서히 침몰하고, 함께 배에 탔던 동료들은 ‘실패의 기억’만을 안고 뿔뿔이 흩어진다. 승리하지 못하는 조직에서 보낸 시간은, 아무리 그 과정이 화기애애했더라도 결국 독이 된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왜 모였는가? 친목 도모를 위해서? 월급을 받기 위해서? 아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즉 ‘승리’하기 위해 모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승리를 잊었다. 아니, 승리를 정의하는 법조차 잊어버린 것 같다. 우리가 쏟은 그 수많은 밤과 열정이 ‘실패’라는 단어 하나로 휘발되어 버린다는 건 참 서글픈 일이다.
AI 시대의 역설
지금은 AI의 시대다. 코딩은 AI가 도와주고, 디자인 시안은 몇 초 만에 쏟아진다. 데이터 분석도 예전처럼 며칠씩 걸리지 않는다. 도구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생산성은 이론적으로 수십 배 올라갔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조직이 겪는 본질적인 문제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을까?
기술은 빛의 속도로 변하는데, 사람이 모여 일하는 방식은 구석기 시대의 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도구가 좋아졌다고 해서 조직이 똑똑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도구의 편리함 뒤에 숨어 본질적인 소통과 의사결정의 결함을 외면하기 쉬워졌다. 슬랙 메시지는 수만 개가 오가지만, 정작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합의는 전무하다.
결국 문제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과 ‘시스템’이다. AI가 코드를 짜줄 순 있어도, 우리 조직이 이번 분기에 반드시 따내야 할 ‘승리’가 무엇인지 정의해주지는 않는다. 그건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정의를 내리는 대신, 더 화려한 도구를 도입하고 더 복잡한 프로세스를 만드는 데 에너지를 낭비한다.
나 역시 그랬다. 초기에 새로운 툴을 도입하면 조직의 문제가 해결될 거라 믿었던 적이 있었다. 노션을 쓰면 정보 공유가 잘 될 거라고, 지라를 쓰면 프로젝트가 체계적으로 돌아갈 거라고. 그게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툴은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숨겨져 있던 문제를 더 선명하게 드러낼 뿐이다.
리더의 독단이라는 함정
다시 이승건 대표의 고백으로 돌아가 보자. 리더의 가장 큰 적은 외부의 경쟁자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언변’과 ‘확신’이다. 리더가 말을 너무 잘하면, 팀원들은 비판적 사고를 멈춘다. 리더의 에너지가 너무 강하면, 잘못된 방향임에도 불구하고 조직 전체가 그 방향으로 전력 질주하게 된다.
이건 비단 C-레벨 리더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니어 개발자, 리드 디자이너, PM… 모든 레벨에서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순간 함정은 파여진다. “내가 이 분야에서 10년을 일했는데”, “내가 예전에 이런 방식으로 성공해봤는데”라는 경험의 저주가 조직의 눈을 가린다.
나도 CTO로 일하던 시절, 그런 독단에 빠졌던 적이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특히 기억나는 건, 새로운 시스템을 설계할 때였다. 나는 마이크로서비스 아키텍처가 정답이라고 확신했다. 팀원 중 한 명이 “지금 우리 규모에서 굳이 MSA를 도입해야 할까요? 모놀리식으로 빠르게 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 질문을 ‘기술적 이해 부족’으로 치부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민망하다.) 내가 설계한 아키텍처가 정답이라고 믿었다. 결국 6개월을 투자해서 복잡한 시스템을 만들었는데, 정작 고객이 원하는 기능 하나 제대로 런칭하지 못했다. 그 팀원이 맞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우아한 아키텍처가 아니라 빠른 실행이었다.
내 언변은 팀원들을 ‘흥분’시켰을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을 ‘잘못된 전장’으로 이끌었다. 리더의 독단은 조직의 잠재력을 억누르는 천장이 된다. 해외 스타트업 실패 사례를 분석한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대목이 있다. “When the leader becomes the primary doer or the ultimate reviewer, they inadvertently cap the organization’s potential.” 리더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검토하는 순간, 조직의 지능은 리더 한 명의 지능으로 수렴한다. 그건 승리하는 조직의 모습이 아니다.
시키는 것만 하는 조직
반대의 경우도 있다. 리더는 방향을 잃고, 팀원들은 ‘시키는 것만’ 하는 상태다. 나는 이를 ‘n빵=1’의 문제라고 부른다. 10명이 모였는데 시너지는커녕 1명의 몫도 제대로 못 해내는 상태. 각자 자기에게 주어진 티켓은 깔끔하게 처리하지만, 그 티켓들이 모여 어떤 가치를 만드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나는 중간 관리자로서 내 팀원들과 목표를 기한내에 달성한 적이 있었다. 정해진 기한 내에 목표한 바를 구현했고 배포했고 목표했던 결과도 얻었다. 그런데 냉정하게 돌아봤을 때, 그 프로젝트가 회사의 성장에 기여한 바는 0이었다. 목표 자체가 잘못되었거나, 시장의 니즈와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내 할 일은 다 했다’는 안도감 뒤에 숨었다. 그건 비겁한 안도감이었다. 그리고 그 안도감은 곧 이유도 모르고 시키는 기능을 구현하느라 무작정 고생했던 팀원들에게 어떠한 보상으로 연결되지 않았고 팀 분위기는 철저하게 박살이 났다. 비극이었다.
이런 조직은 스포츠 팀으로 비유하자면, 수비수는 자기 구역만 지키고 공격수는 공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팀과 같다. 골을 넣어야 이기는 게임인데, 아무도 골대를 향해 뛰지 않는다. 그저 감독이 시킨 위치에 서 있을 뿐이다.
“골을 넣는 게 목표라면 어디로 달려야 할지는 내가 판단하고 싶다.”
이건 오만함이 아니다. 승리에 대한 갈망이다. 진짜 승리하고 싶은 선수는 경기 흐름을 읽고, 빈 공간을 찾아 스스로 움직인다. 감독의 전술은 가이드일 뿐, 필드 위에서의 최종 판단은 선수의 몫이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조직이 팀원들의 이 ‘판단력’을 거세한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하세요”라는 말 한마디가 조직의 승리 가능성을 짓밟는다.
팀원을 존중했지만 실패한 5년
그렇다면 팀원을 무한히 존중하고, 그들에게 모든 자율을 주면 승리할까? 토스의 초기 5년이 그 반례를 보여준다. 이승건 대표는 초기에 ‘정말 좋은 대표’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팀원들이 너무 고마워서 함부로 대하지 못했고, 항상 기회를 더 주려 노력했다. 결과는? 5년 동안의 연속된 실패였다.
실패가 확정된 순간, 그 ‘좋은 경험’들은 순식간에 ‘지우고 싶은 기억’으로 변했다. 팀원들은 “당신과 일했던 시간은 내 인생에서 지우고 싶다”는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아프지만 이게 현실이다. 패배에 익숙해진 조직에서의 ‘친절’은 무책임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나 역시 리더 시절, 비슷한 실수를 범했다. 한 팀원이 담당하던 프로젝트가 계속 지연되고 있었다. 그 팀원은 능력은 있었지만 업무 우선순위를 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나는 그게 보였다. 그런데 팀 분위기가 나빠질까 봐, 그 팀원이 지쳐 보인다는 이유로 날카로운 피드백을 주저했다. “괜찮아요, 천천히 해도 돼요”라고 말했다. 실패가 예견되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잘하고 있다”는 근거 없는 낙관론을 펼쳤다.
3개월 후 프로젝트는 결국 접혔다. 그 팀원은 퇴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차라리 일찍 말해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제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 몰랐어요.” 그때 깨달았다. 리더가 진정으로 팀원을 존중하는 방법은 그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승리’하는 것이라는 걸. 진정한 존중은 때로 아픈 진실을 말하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승리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그토록 갈구해야 할 ‘승리’란 무엇인가? 단순히 매출 목표를 달성하는 것? 상장(IPO)을 하는 것? 물론 그것들도 승리의 지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본질적인 승리는 “조직원 전체가 결과에서 승리를 느끼는 것” 이다.
단순히 목표 숫자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든 제품이 세상에 나갔을 때 고객의 삶을 실제로 변화시키고, 그 과정에서 우리 모두가 “우리가 해냈다”는 압도적인 성취감을 공유하는 상태. 그게 진짜 승리다.
승리는 중독성이 있다. 한 번 승리의 맛을 본 조직은 다음 승리를 위해 스스로 움직인다. 반면, 패배에 익숙해진 조직은 패배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고 서로를 탓하는 데 익숙해진다. 승리는 조직의 모든 갈등을 잠재우는 최고의 치료제다. 물론 승리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문제를 해결할 동력은 생긴다. 승리는 조직에 흐르는 피와 같다. 피가 돌아야 생명이 유지되듯, 승리가 있어야 조직이 살아 숨 쉰다.
감독과 선수의 진짜 관계
승리하는 조직은 잘 훈련된 엘리트 스포츠 팀과 닮았다. 축구팀의 감독을 생각해보자. 감독은 상대 팀을 분석하고, 우리 팀의 강점을 살릴 전술을 짠다. 그런데 경기가 시작되면 감독이 필드 안으로 뛰어 들어갈 수는 없다.
필드 위에서 공을 잡은 선수는 0.1초 만에 판단해야 한다. 패스할 것인가, 드리블할 것인가, 아니면 슛을 쏠 것인가? 이때 선수가 벤치에 있는 감독의 눈치를 보느라 판단을 지체한다면, 그 팀은 절대 이길 수 없다.
승리하는 팀의 특징은 명확하다.
목표의 공유: 모든 선수가 “오늘 반드시 이긴다”는 목표에 정렬되어 있다.
역할의 전문성: 골키퍼는 골을 막고, 공격수는 골을 넣는다.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되, 필요할 때는 기꺼이 돕는다.
현장의 자율성: 전술의 큰 틀 안에서 선수의 창의적 판단을 극도로 존중한다.
우리 조직은 어떤가? 리더가 필드 안까지 들어와 선수들의 발을 붙잡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선수들이 공이 어디 있는지조차 모른 채 멍하니 서 있지는 않은가? 승리하는 팀은 감독의 지시 없이도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그게 바로 시스템의 힘이다.
PM의 진짜 역할
여기서 PM(Product Manager)의 역할이 중요하다. 많은 조직에서 PM을 ‘요구사항 전달자’나 ‘일정 관리자’ 정도로 취급한다. 그런데 승리하는 조직에서 PM은 ‘승리 설계자’ 여야 한다.
PM은 단순히 기능을 나열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 기능을 만들면 왜 우리가 승리하는가?”를 증명해야 하는 사람이다. 기술적 제약과 비즈니스 목표, 그리고 고객의 니즈 사이에서 승리의 방정식을 찾아내야 한다.
나 역시 PM 역할을 수행하며 뼈저리게 느낀 것이 있다. PM이 승리를 정의하지 못하면, 개발자와 디자이너는 ‘의미 없는 노동’에 시달리게 된다. PM은 팀원들에게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왜 이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지”를 설득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PM의 가장 큰 무기는 데이터나 기획서가 아니라,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확신’이다.
포기할 줄 아는 용기
승리하지 못하는 조직의 공통점 중 하나는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도 중요하고, 저것도 놓칠 수 없다. 결국 리소스는 분산되고, 어떤 전장에서도 승리하지 못한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하나의 목표에 집중해야 승리든 실패든 명확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어설프게 여러 개를 건드리다 실패하면, 왜 실패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우리가 리소스가 부족해서 실패했나?”라는 비겁한 변명 뒤에 숨게 될 뿐이다.
가장 뼈아팠던 경험 중 하나가 이거다. 우리는 세 개의 신규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했다. 인원은 한정되어 있었는데, 세 개 다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어떤 걸 포기해야 할지 결정하기가 두려웠다. (결정을 미루는 것도 결정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결과는? 세 개 다 중도에 흐지부지됐다. 하나에 올인했으면 적어도 하나는 성공시켰을 텐데, 욕심을 부린 대가였다. 그때 배웠다. 포기할 수 있어야 집중할 수 있고, 집중해야 승리할 수 있다. 리더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건 정말 어렵다. 그런데 반드시 해야 한다. 포기는 패배가 아니라, 더 큰 승리를 위한 전략적 후퇴다.
무너지는 조직의 징후
승리 없는 조직은 서서히, 그런데 확실하게 무너진다. 그 징후는 세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인재 유출 이다. 유능한 인재는 승리의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는다. 반대로 승리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조직에서는 가장 먼저 짐을 싼다. 회사를 떠나는 순간, 기술도, 전략도, 경쟁력도 함께 떠난다. 특히 유능한 인재는 “내가 이 조직에서 성장할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자문한다. 승리 없는 조직에서의 성장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유능한 인재는 돈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승리의 경험을 따라간다.
둘째, 리더의 고립 이다. 승리가 없으면 리더의 말에는 힘이 빠진다. 팀원들은 리더의 비전을 ‘공허한 외침’으로 치부하기 시작한다. 리더는 점점 더 강압적인 수단을 동원하게 되고, 이는 다시 팀원들의 반발을 불러오는 악순환에 빠진다.
셋째, 문화의 부패 이다. 승리라는 공동의 목표가 사라진 자리에 정치와 냉소가 들어앉는다. “어차피 안 될 텐데 적당히 하자”는 마인드가 조직 전체를 지배한다. 냉소는 조직을 갉아먹는 암세포와 같다.
외부 사례를 보자. 82%의 스타트업이 실패하는 이유는 자금 부족이 아니라, 나쁜 경영과 리더십 때문이다. 반면, 성공하는 조직은 다르다. 조지아의 TBC Bank는 OKR을 통해 1,200명의 조직을 하나의 목표로 정렬시켜 2024년 최고의 디지털 뱅크가 되었다. 국내의 쿠팡은 ‘로켓배송’이라는 도전적인 목표를 세우고 실시간으로 측정하며 승리를 쟁취했다. 카카오는 OKR 도입 후 프로젝트 속도가 1.5배 빨라졌고, 배달의민족은 팀 간 협업의 목적을 명확히 함으로써 승리의 기반을 닦았다. 이들은 모두 승리를 ‘정의’하고 ‘측정’했다. OKR이든 뭐든 좋다. 그런건 방법론에 불과하다. 중요한 건 조직에게 승리의 방향을 보여주고 있나? 아니면 조직이 승리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느끼는가?
나가며
글을 마치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승리하고 있는가?”
혹은 “내가 속한 조직은 승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
승리는 우연히 찾아오지 않는다. 승리는 처절한 자기 객관화와, 아픈 피드백을 견뎌내는 용기, 그리고 “반드시 이기겠다”는 집요한 의지 끝에 얻어지는 것이다.
리더가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맞다. 리더는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다만 “방향은 제시하되 과정은 자율을” 주어야 한다. 골대를 가리키는 건 리더의 몫이지만, 그 골대를 향해 어떤 드리블로 돌파할지는 선수의 몫이다.
승리를 정의하지 못한 조직에게 미래는 없다. 그저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며 서서히 잊혀갈 뿐이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부터라도 승리를 정의하고, 서로에게 아프지만 필요한 말을 건네며, 하나의 목표에 몰입한다면… 미래는 바뀔 수 있다. 승리는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승리를 위한 실천들,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
글을 마무리하려다 보니,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데?”라는 질문이 들릴 것 같아 몇 가지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덧붙인다. 이건 내가 5년동안 대표로서 회사를 직접 운영해보고 또 4년간의 CTO 생활을 통해 얻은 교훈들이다. 이론이 아니라 현장에서 깨지며 배운 것들이다.
1 on 1의 힘
조직이 커질수록 리더는 현장과 멀어진다. 이때 가장 강력한 도구는 1 on 1이다. 단순히 업무 진척도를 체크하는 자리가 아니다. 팀원의 고민이 무엇인지, 그가 생각하는 조직의 병목이 어디인지, 그리고 그가 이 조직에서 ‘승리’를 느끼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자리여야 한다.
나는 내가 운영했던 조직에서 이 1 on 1을 소홀히 했던 것을 가장 크게 후회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격주로 미루고, 결국 월간으로 흐지부지됐다. 그 사이 팀원들의 불만은 쌓였고, 나는 그걸 너무 늦게 알았다. 타이밍을 놓친 대화는 나중에 수십 배의 비용으로 돌아온다. 대화는 조직의 윤활유다. 윤활유가 마르면 엔진은 타버린다.
투명한 정보 공유
승리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같은 지도를 보고 있어야 한다. 경영진만 아는 정보, 리더들끼리만 공유하는 맥락은 팀원들을 ‘소외된 노동자’로 만든다. 왜 이 프로젝트를 하는지, 현재 회사의 재무 상태는 어떤지, 우리가 직면한 진짜 위기가 무엇인지 투명하게 공유해야 한다. 정보의 비대칭은 불신을 낳고, 불신은 승리의 의지를 꺾는다.
실패의 회고, 승리의 축하
실패했을 때 비난하는 조직은 많지만, 제대로 회고하는 조직은 드물다. 왜 실패했는지, 다음에는 무엇을 다르게 할 것인지 기록하고 공유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승리했을 때 충분히 축하하는 것도 중요하다. 작은 승리들이 모여 큰 승리의 문화를 만든다. 회고는 지혜를 낳고, 축하는 에너지를 낳는다.
고객에게 미치기
결국 모든 승리는 고객으로부터 온다. 개발자도, 디자이너도 고객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야 한다. PM이 정리해준 문서만 보고 코드를 짜는 건 ‘대리 승리’일 뿐이다. 내가 짠 코드 한 줄이 고객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직접 목격할 때, 메이커는 진짜 승리를 경험한다. 고객은 우리의 유일한 북극성이다.
심리적 안전감과 높은 기준
팀원들이 실수해도 비난받지 않는다는 ‘심리적 안전감’이 있어야 도전적인 시도가 가능하다. 그런데 동시에 ‘높은 기준’이 유지되어야 한다. 안전하기만 하고 기준이 낮으면 조직은 정체된다. 반대로 기준만 높고 안전하지 않으면 조직은 타버린다. 이 두 가지의 균형을 잡는 것이 리더의 핵심 역량이다. 안전한 환경에서 높은 기준을 추구할 때, 최고의 성과가 나온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큰 조직을 꾸리다가 다시 자연인(?)으로 돌아와 그때를 돌아보니, 남은 건 화려한 기술 스택이나 거창한 아키텍처가 아니었다. 결국 ‘사람’과 ‘승리’ 그리고 ‘실패’에 대한 기억뿐이다. 함께 밤을 새우며 문제를 해결했던 동료들, 런칭의 기쁨을 나누며 맥주 한 잔을 기울였던 순간들…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만들었다. 분명히 행복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이 진정한 비즈니스 가치, 고객 가치로 전환되는 데는 실패했다. 결국 얼마나 오래, 얼마나 많이 일하는지로 사람의 능력과 로열티를 판단하게 됐다. 어떤 가치를, 어떤 비전을, 어떤 얘기를 해도 내 말은 더 이상 그들에게 존중받지 못했다. 그 ‘실패’의 기억은 지금도 뼈저리다.
그 당시에는 변명하고 싶은 마음도, 억울한 마음도 많이 있었지만 이제는 다시 앞으로 나아갈 때이다.
나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지난 과거의 실패와 성공을 거름 삼아, 다시 한번 ‘승리하는 조직’을 꿈꾼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전장에서 승리를 갈구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당분간 Ellie와 함께 2인팀에 집중하겠지만, 언젠가 다시 이전과 같은 다른 회사의 중간 관리자로 조직을 책임지게 된다면, 과정에 대한 자율이 보장받고 결과에 대한 책임만을 묻는 조직, 승리에 대한 방향성을 모두에게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어 골대를 향해 모두가 알아서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조직을 책임지고 싶다.
부디 당신의 조직이, 당신의 팀이, 그리고 당신 자신이 오늘 하루 승리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승리하지 못하는 조직에게 미래는 없지만,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
결국, 승리는 포기하지 않는 자들의 몫이다.
“Winning solves everything.” 승리는 모든 것을 해결한다.
— 타이거 우즈
2025년 회고를 이 글로 대신한다. 나에게 2025년은 리커버리의 시간이었다. 안식년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오래전에 쓰다 덮어놓았던 글이 있었다. 너무 네거티브하고 블레임으로 가득 차서 차마 발행하지 못했던 글. 지금 시점에서 다시 닦고 닦아 내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글로서 발행한다. 이 글이 나에게 힐링이 되었듯, 여러분에게도 그랬으면 좋겠다.
종교는 없지만, 신이 있다면 항상 기도하고 싶다. “저에게서 타인에 대한 노여움을 거둬주시고, 그들을 포용하며 이해하고, 제 내면을 마주하고 다시 한걸음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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