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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 판교에 IT대기업 다니는 박 팀장 이야기 - 에피소드 1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이름, 집단, 사건은 허구이며 실존하는 것들을 기반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Author: flowkater


에피소드 1: 석 달째


[오전 10:17] 박 팀장 - 부서장실에서

부서장님께서 호출을 했다.

요즘 팀원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석 달째 야근이다. 주말에도 나왔다. 지난주에는 하 과장이 나를 찾아왔다. 회의실 문을 닫고 앉자마자 “팀장님, 솔직히 말씀드려도 될까요”라고 했다. 솔직히 말하겠다는 사람치고 좋은 얘기 하는 사람 못 봤다. 예상대로였다. 일정이 너무 빡빡하다, 이러다 다 쓰러진다, 이번 주말에도 나오라는 건 아니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들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나도 같은 생각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주어진 기한 내에는 어느 정도 완료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팀장으로서 팀원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그래도 나름 리더십을 발휘해서 한 명 한 명 얘기도 해보고, 혼도 내고, 달래도 가면서 일정을 푸시하고 있다. 리더십이라고 하기엔 좀 웃기다. 그냥 사정하는 거다. 제발 조금만 더 해달라고.

일정은 어찌저찌 맞춰질 것 같으니 큰 걱정 없이 부서장실로 들어갔다.

부서장실 문을 열기 전에 심호흡을 한 번 했다. 습관이다. 이 문을 열면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팀장님, 별일 없지요?”

내가 인사하기도 전에 부서장님은 먼저 안부를 묻는다. 프로젝트 일정의 특이사항을 묻는 것이다. 부서장님은 서류를 보면서 말했다.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항상 그렇다. 평소 대화할 때는 상대방 눈을 안 본다. 모니터나 서류를 본다. 그게 더 불안하다.

“아, 예, 부서장님. 별일 없습니다. 지난번 말씀드린 일정을 지키기에는 전혀 문제없습니다.”

“아, 그래요? 생각보다 문제가 없나 보군요.”

부서장님이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 안경 너머로 눈이 보였다.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안도했다. 일단 첫 번째 관문은 통과한 것 같았다.

“근데, 팀장님.”

부서장님이 서류를 내려놓았다. 두 손을 깍지 끼고 책상 위에 올렸다. 이 자세. 뭔가 얘기할 게 있다는 자세다.

“지난번에 기한 내에 못 한다고 제외한 기능 말이죠.”

심장이 한 박자 빨라졌다. 설마.

“아, AI 기능과 통합하는 그 기능 말씀이신가요?”

“예, 그거요.”

불안하다. 왜 갑자기 그 얘기를 꺼내는 거지. 분명히 그건 제외하기로 했다. 회의록에도 남겼다. 메일로도 공유했다.

“그거 혹시 이번 기한에 같이 넣어줄 수 있을까요?”

나는 재빠르게 대답했다.

“아니, 그건 부서장님. 지난번 논의와 협의를 통해서 다 같이 이번 기한에 중요도도 떨어지고, 그래서 일단 제외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중요도요?”

부서장님이 내 말을 끊었다.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갔다. 아니, 올라간 건 아닌데 뭔가 날카로워졌다.

“중요도가 떨어지는 게 아니라, 팀장님께서 팀원들 역량으로는 당시에 기한 내에 못 할 것 같다고 하셨잖아요.”

”…”

“그런데 확실히 푸시하니까 되는 것 같아서, 이것까지는 완성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푸시. 어딜 더 밀어야 할까. 분명 팀원들을 푸시하는 건 나인데, 최근에는 내가 밀리는 느낌이다. 매일 밤 야근하고 주말에 작업하는 것이 푸시. 그 한 단어다.

“아니, 그때 분명히 그 부분은 제외하기로 했고, 그건 저희 팀원들 역량이 아니라… 중요도 때문에…”

“중요도가 안 중요하다는 말은 저는 그때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부서장님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여유로운 자세였다. 나는 서 있었다. 앉으라는 말을 안 했으니까.

“혹시 팀장님도 중요도가 많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저희 이번 프로젝트에서 이 부분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요즘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 상대방의 말이 안 통하면 가끔 그 말을 듣고도 대답하지 않는다. 집에서 아내와 아이들이 나에게 무얼 물어볼 때도 멀뚱멀뚱 대답을 하지 않는다고 몇 번 잔소리를 들었다. 아빠 왜 대답 안 해, 하고 큰애가 내 팔을 흔들 때서야 정신이 든다.

중요도를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왜 중요한데요. 누가 중요하다고 했는데요. 그 기능이 없으면 뭐가 문제인데요. 실제로 쓸 고객이 있긴 한 건가요.

어차피 물어봐야 소용없다. 사실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가 무엇인지, 우리가 하는 파트가 어디 부분에 기여하는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중요도를 판단하는 것도 어렵다. 그 부분은 부서장 담당이다. 우리는 부서장이 정해준 솔루션을 그대로 구현하고 있다. 고객이 누군지도 모른다. 소프트웨어 구매를 대행해 주는 업체가 있고, 그 업체에서 이런 기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실제 사용자가 뭘 원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도에 대해서 다시 따져 봐야 오늘 날짜 안에 퇴근할 가능성이 급격히 희박해질 것 같았다.

억지로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저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팀원들이랑 논의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내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렸다.

“예, 좋습니다.”

처음으로 부서장님의 표정이 밝아졌다. 내 마음은 더욱 어두워졌다.

“팀장님, 이제 좀 저희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일하는 것 같네요. 팀원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헌신한다면 분명히 다른 부분까지 추가로 해낼 수 있을 거라 봅니다.”

헌신. 또 그런 단어다.

부서장은 다시 서류를 집어 들었다. 나를 쳐다보지 않고 본인의 자리에서 자신의 서류와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서 얘기를 한다. 면담이 끝났다는 신호다.

“팀원들은 지금도 이미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아차.

왜 이 말이 나왔지. 참으려고 했는데. 내 표정은 이미 굳어 있다.

부서장은 서류에서 눈을 떼고 어느새 내 눈을 쳐다보고 있다. 안경 너머로. 중요한 순간에만 눈을 마주친다. 몇 초간의 침묵이 흘렀다.

“그래요?”

한 마디였다. 그 한 마디 안에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정말요? 제가 보기엔 아닌데요. 팀장님이 팀원들을 제대로 관리하고 있는 건 맞나요.

나는 표정을 풀었다. 억지로 풀었다.

“더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부서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서류를 봤다.

“그래요, 저도 다음 스케줄이 있어서.”

나는 후다닥 부서장실을 나왔다. 문을 닫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복도 벽에 잠시 기대섰다. 지나가는 사람이 이상하게 쳐다봤다.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우리 사무실은 부서장실 층에서 2층 아래에 있다. 많은 차이는 아니지만 워낙 큰 건물이다 보니 대개 사람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닌다.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버튼을 누르려다가 멈췄다.

지금 사무실에 내려가면 팀원들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지. AI 기능 다시 넣어야 한대. 일정은 그대로고. 어떻게 말하지.

스타트업 하다가 망하고 들어온 회사다. 8년이 됐다. 그때는 내가 결정하면 됐다. 망해도 내 책임이었다. 지금은 뭐지. 결정권도 없고, 책임만 있다.

나는 바로 우리 층을 누르지 않고 지하 1층을 눌렀다. 지하 1층에는 야외 흡연실이 있다.

담배는 5년 전에 끊었다. 그런데 요즘 자꾸 흡연실에 간다. 담배를 피우러 가는 게 아니다. 그냥 거기 서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오후 3:24] 김 대리 - 사무실에서

짜증이 난다.

그래도 나름 좋은 회사에 들어왔다고 생각했다. 대기업 계열사, 연봉도 괜찮고, 무엇보다 면접 때 기술 문화 얘기를 그렇게 해놓고. 코드 리뷰는 필수라고 했다. PR 올리면 최소 두 명 이상이 리뷰하고, 테스트 커버리지 80% 이상 유지한다고 했다. 기술 부채 관리도 철저히 하고, 분기마다 리팩토링 스프린트도 따로 잡는다고 했다. 그래서 왔다. 여기라면 개발자로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입사한 지 1년. 그런 건 다 사라졌다. 업무가 바쁘다는 핑계로.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처음에는 PR을 꼼꼼히 올렸다. 테스트 코드도 작성하고, 변수명도 고민하고, 함수 하나 만들 때도 단일 책임 원칙을 생각했다. 전 회사에서 그렇게 했다. 전 회사에서는 코드 리뷰에서 칭찬도 받았다. 설계를 깔끔하게 한다고. 네이밍 센스가 좋다고. 오픈소스 컨트리뷰션도 몇 번 했다. 내 PR이 머지됐을 때 그 기분을 아직도 기억한다.

여기서는 다르다. 리뷰 요청을 올려도 이틀이 지나도 안 달렸다. 팀장님한테 물어봤더니 “아, 그거 그냥 머지해. 지금 바빠서”라고 했다. 그래서 머지했다. 그 다음부터는 리뷰 요청을 안 했다. 어차피 아무도 안 보니까.

요즘 내가 뭘 하고 있나 싶다.

기능 하나를 추가하는데, 비슷한 코드가 이미 세 군데 있었다. 공통 모듈로 빼면 되는 건데, 그러려면 기존 코드를 건드려야 한다. 기존 코드를 건드리면 테스트를 돌려야 한다. 테스트가 없다. 그러면 QA를 다시 해야 한다. QA 일정은 이미 꽉 차 있다. 결론은, 그냥 복사해서 붙여넣어라.

그래서 복사해서 붙여넣었다. 변수명만 바꾸고. 또 복사하고 붙여넣었다.

내가 실력이 없어서 이러는 게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처음에는 이건 아닌 것 같다고, 공통 모듈로 빼자고 몇 번 얘기했다. 팀장님은 그때마다 “나중에 시간 나면 하자”라고 했다. 그 나중은 오지 않았다. 반복 코드는 늘어났고, 기술 부채는 쌓여갔다. 나도 더 이상 얘기 안 했다. 얘기해 봐야 바뀌는 게 없으니까.

그래도 그건 참을 수 있었다. 어쨌든 일정은 빡빡하지만 맞출 수 있었으니까. 밤 열 시, 열한 시까지 남아서 야근하면 어떻게든 되긴 됐으니까. 벌써 석 달째다. 주말에도 나왔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그나마 편했다. 끝이 보이니까.

그때 팀장님이 부서장실에서 내려오셨다. 표정이 안 좋았다. 평소보다 더 안 좋았다. 눈이 충혈돼 있었다. 담배 냄새가 났다. 팀장님 담배 끊은 지 오래됐다고 했는데.

팀장님이 자리에 앉지 않고 우리 쪽을 둘러봤다.

“다들 잠깐.”

키보드 치던 손들이 멈췄다. 하 과장, 이 과장, 정 대리, 윤 사원. 다들 팀장님을 쳐다봤다. 나도.

“그 AI 통합 기능 있잖아.”

심장이 철렁했다. 설마.

“그거 다시 넣어야 할 것 같아.”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누군가 한숨을 쉬었다. 하 과장이었다.

“팀장님, 그거 빠졌잖아요. 중요도가 떨어져서 일정에서 제외됐다고…”

“다시 넣어야 해. 부서장님 뜻이야.”

“그때 회의에서 빼기로 했잖아요. 회의록에도 있고, 메일로도 공유했잖아요.”

“나도 알아.”

팀장님 목소리가 지쳐 있었다. 하 과장이 더 말하려다가 멈췄다.

“일정은요?”

내가 물었다.

“똑같아.”

”…그게 되나요?”

팀장님이 나를 쳐다봤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팀장님 눈에 뭔가가 있었다. 미안함인지 체념인지 모르겠다.

“야근 좀 더 해야 할 것 같아.”

야근 좀 더. 지금도 매일 열 시까지 하고 있는데. 석 달째. 좀 더 하면 열두 시인가. 새벽 한 시인가.

“알겠습니다.”

그 말밖에 안 나왔다. 더 할 말이 없었다.

팀장님이 자리로 돌아갔다. 사무실이 다시 조용해졌다.

팀장님 표정이 이상했다. 화난 건지 지친 건지. 아니, 둘 다인 것 같았다. 팀장님도 싫은 거다. 그걸 알면서도 짜증이 났다. 알면 뭐하나. 어차피 우리한테 내려오는 건 똑같은데.

하 과장이 작게 욕을 했다.

“씨발.”

아무도 뭐라고 안 했다.

저녁 일곱 시가 됐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인데 하 과장이 일어났다.

“나 먼저 간다. 오늘 들은 거 내일 생각할래.”

“아, 예. 수고하셨습니다.”

하 과장이 나갔다. 잠시 후 이 과장도 일어났다.

“나도. 어차피 오늘 시작해 봤자.”

이 과장도 나갔다. 정 대리도 일어났다.

“선배님, 저도 갈게요.”

“응, 수고.”

정 대리도 나갔다. 윤 사원은 여섯 시 칼퇴했다. 신입이라 야근을 안 시킨다.

다들 그랬다. 오늘 추가된 건 내일 생각하기로 한 것 같았다. 평소 같으면 열 시, 열한 시까지 남았을 텐데. 오늘은 뭔가 다 지쳐 있었다. 팀장님은 아까 회의실로 들어가셨다. 전화하시는 것 같았다.

다들 똑같은 입장이다. 다들 야근하고 있고, 다들 지쳐 있고, 다들 이게 말이 안 된다는 걸 안다.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 내가 안 하면 내일 아침 회의에서 진척이 없다고 혼난다. 내가 안 하면 일정이 밀린다.

그래서 남았다. 나만 남았다. 책임감 때문인지, 바보 같아서인지 모르겠다.

모니터를 다시 봤다. 복사해 둔 코드가 여전히 떠 있다. 커서가 깜빡거렸다.

시키는 것만 하는 것도 지친다. 그런데 시키는 게 계속 늘어난다.

솔직히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가 뭔지 모르겠다. 고객들이 쓴다고는 하는데, 아직 파는 상태도 아니다. 중간 대행업체가 있고, 그 업체에서 이런 기능이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실제 사용자가 원하는 게 아니라 중간 업체가 원하는 거다. 개발해야 판다고 하는데, 솔직히 이렇게 만든 거 쓸 것 같지도 않다.

아홉 시쯤 나도 퇴근했다. 더 해봤자 집중이 안 됐다. 솔직히 오늘 들은 얘기가 머릿속에서 안 지워졌다. AI 통합. 남은 일정. 야근 좀 더.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생각하기 싫었다.

사무실을 나왔다. 아홉 시인데도 복도에 불이 꺼져 있었다. 비상등만 켜져 있었다. 내 발소리만 울렸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생각했다. 이직해야 하나. 여기 온 지 1년도 안 됐는데. 이력서에 안 좋아 보일 텐데. 이러다가 정말 몸 버리겠다.

엘리베이터가 왔다. 탔다. 거울에 내 얼굴이 비쳤다. 처음 입사했을 때보다 늙어 보였다. 1년도 안 됐는데.


[오후 10:47] 박 팀장 - 집에서

저녁 아홉 시쯤 현기증을 느껴서 퇴근을 했다.

사무실에서 일어나는데 눈앞이 핑 돌았다. 책상 모서리를 잡고 잠깐 서 있었다. 김 대리가 괜찮으냐고 물었다. 괜찮다고 했다. 괜찮지 않았다.

요즘 밥을 제대로 못 먹어서 그런 것 같다. 점심은 대충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때우고, 저녁은 먹을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다. 아침은 원래 안 먹는다. 그러니까 하루에 삼각김밥 두 개가 전부인 날도 있다. 그게 며칠째 계속됐다.

매일 차로 퇴근하다 보니 아홉 시에 퇴근해도 집에 도착하면 열 시쯤 된다. 운전하면서 졸린 적이 몇 번 있었다. 위험하다는 걸 안다. 그래도 대중교통 타면 더 늦는다.

오늘도 그랬다. 열 시 조금 넘어서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었다. 거실 불이 켜져 있었다. 아이들 방은 불이 꺼져 있었다. 벌써 잠들었나 보다.

신발을 벗는데 작은 운동화가 보였다. 딸내미 거다. 분홍색 운동화. 오늘 어린이집에서 뭐 했는지 모른다. 내일 뭐 하는지도 모른다. 참관 수업이 있다고 아내가 말했던 것 같은데, 언제였더라.

요즘 아이들 얼굴을 제대로 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아침에 나갈 때는 아직 자고 있고, 밤에 들어오면 이미 자고 있다. 주말에만 얼굴을 본다. 주말에도 피곤해서 많이 놀아주지 못한다. 큰애가 여섯 살이고 작은애가 네 살인데, 둘 다 아직 어린이집 다니는 나이다. 아빠 얼굴 볼 시간이 없다.

아내가 현관에서 나를 맞아줬다.

“오늘도 고생했어.”

고맙다. 미안하다. 매일 이 시간에 들어오는 남편을 기다려줘서 고맙다. 아이들 혼자 재우게 해서 미안하다. 말은 안 했다. 고개만 끄덕였다. 말하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왜인지 모르겠다.

“뭐 좀 먹을래? 국이랑 밥 있어.”

“응, 고마워. 샤워하고 먹을게.”

샤워실에 들어가서 물을 틀었다. 뜨거운 물이 등을 타고 흘렀다. 잠깐 벽에 기대섰다. 눈을 감았다. 부서장님 얼굴이 떠올랐다. “팀원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헌신한다면.” 헌신. 그 말이 계속 떠올랐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 거실 소파에 앉았다. 아내가 주방에서 뭔가를 데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릇 부딪히는 소리. 전자레인지 돌아가는 소리. 평화로운 소리들이었다. 이 집만큼은 평화롭다.

눈을 감았다. 잠깐 졸았나 보다.

핸드폰이 울렸다.

진동이 소파 쿠션을 타고 전해졌다. 눈을 떴다. 화면을 봤다. 부서장님이다.

이 시간에?

뭐지. 무슨 일이지. 오늘 팀원들한테 추가 기능 하라고 얘기도 했고, 다들 알겠다고 했고. 뭐가 문제지.

손이 떨렸다. 전화 받기 버튼을 누르는 데 시간이 걸렸다.

“여보세요.”

목소리가 갈라졌다.

“팀장님, 지금 어디에요?”

다짜고짜 어디냐고 묻는다. 인사도 없이.

“집입니다.”

“아, 집이요.”

부서장님 목소리에 뭔가가 섞여 있었다. 실망인가. 비난인가. 잘 모르겠다.

“팀장님, 지금 정말 중요한 시기인 거 아시죠?”

“예, 알고 있습니다.”

“저희 프로젝트가 이번에 성공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거 아시죠?”

“예.”

“팀장님께서 정말 중요하다고 느끼고 계시는 거 맞죠?”

“예.”

“팀원들한테도 중요하다고 충분히 전달하셨고요?”

“예, 오늘 얘기했습니다.”

“팀원들도 다 같이 헌신하고 있는 거 맞죠?”

유도 심문 같은 질문이 몇 번 왔다 갔다 한다. 나는 예, 예, 하고 대답했다. 예. 예. 예.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부서장님이 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본론을 꺼내기 전의 그 특유의 침묵이었다.

“그런데 제가 열 시쯤 사무실에 확인을 했는데요.”

심장이 멈춘 것 같았다.

“사무실에 아무도 없더라고요?”

”…”

“팀장님께서 정말 중요하다고 느끼고 팀원들을 잘 이끌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입이 열리지 않았다. 또 그 습관이 나왔다. 말이 안 통하면 대답을 못 하는 습관.

머릿속에서 뭔가가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줄이 툭 하고 끊어지는 느낌.

“팀장님?”

”…예.”

“제 말 듣고 계시죠?”

“예.”

“내일 아침에 얘기하시죠. 출근하시면 저한테 먼저 오세요.”

“예.”

전화가 끊겼다.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손에 힘이 없었다. 소파 쿠션 위에 핸드폰이 떨어졌다.

아내가 거실로 나왔다. 손에 따뜻한 국물이 담긴 그릇을 들고 있었다. 미역국이었다.

“무슨 전화야?”

”…회사.”

“이 시간에?”

“응.”

“무슨 일이야?”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사무실에 아무도 없었다고. 부서장님이 확인했다고. 내일 아침에 오라고.

아내는 그릇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내 옆에 앉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옆에 앉아 있었다. 아내의 손이 내 손 위에 올라왔다. 따뜻했다. 나는 그 손을 잡지 않았다. 잡을 힘이 없었다.

아내가 조용히 물었다.

“많이 힘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전부였다. 더 말할 수가 없었다.

천장을 올려다봤다. 하얀 천장. 금이라도 가 있으면 좋겠다. 뭐라도 있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없었다.

국이 완전히 식었다. 김이 더 이상 나지 않았다. 먹어야 하는데.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내가 일어나서 주방으로 갔다. 다시 데우려는 것 같았다. 나는 말리지 않았다. 말릴 힘도 없었다.

여섯 시간 후면 알람이 울린다. 일곱 시간 후면 다시 그 건물 앞에 서 있다. 여덟 시간 후면 부서장실 문을 연다.

뭐라고 말하지.

팀원들이 게을러서 그렇다고 할까. 제가 관리를 못 해서 그렇다고 할까. 둘 다 거짓말이다. 그런데 그 말 외에 뭘 할 수 있지.

거실 시계 초침 소리가 들렸다. 똑. 똑. 똑.

내일은 온다. 준비 같은 건 상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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